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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보랏빛 스카프와 정수기CF에 가려진 진보정치 '원석(原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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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대표 김종철, 35세에 서울시장 출마…진보정치 경력 20년 '외길 인생', 그의 새로운 도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정치, 그날엔…] 보랏빛 스카프와 정수기CF에 가려진 진보정치 '원석(原石)'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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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새로운 수장이 된 김종철 대표는 민주노동당이 창당하기도 전에 ‘진보정치’와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권영길 국민승리21 대표의 비서로 합류한 시기는 1999년 1월1일. 만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진보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정치인 김종철의 프로필에는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정치인 김종철은 1993년 말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당시 승자는 강병원 후보로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정치인 김종철이 정계에 입문하던 시절에는 이른바 ‘386세대’로 불렸던 학생운동 출신들이 여의도 정가의 ‘젊은 피’로 주목받았다. 정치인 김종철은 서울대 90학번으로 엄밀히 말하면 386과는 거리가 있다.


정치인 김종철은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 중 90년대 학번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정치인 김종철의 친구인 박용진 민주당 의원(성균관대 90학번)과 함께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면서 진보정치의 차세대 기수로 주목받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박 의원은 민주당 쪽에 합류해 정치적 역량을 토대로 재선 의원이 됐다.


[정치, 그날엔…] 보랏빛 스카프와 정수기CF에 가려진 진보정치 '원석(原石)'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치인 김종철은 진보정치 굴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경험한 인물이다. 진보정치를 언급할 때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등 대선 후보급 정치인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들이 집중 조명을 받을 때 백그라운드에서 진보정치의 뿌리를 튼튼하게 했던 이들이 있다. 정치인 김종철은 그들 중 한 명이다.


정치인 김종철은 2000년대 중반에 진보정치 차세대 대표주자로 주목받았다. 또래의 다른 정치인들보다 ‘큰 물’에서 경쟁할 기회를 먼저 잡았다. 2006년 5월31일,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민주노동당 후보 시절 그의 나이는 만 35세에 불과했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다졌던 정치적 내공과 선명한 메시지는 그의 강력한 무기였지만,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신선한’ 이미지의 경쟁자가 두 명이나 더 있었다. ‘보랏빛 스카프’와 함께 서울시장 선거 초반 파란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던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와 ‘보랏빛 강풍’을 잠재운 정수기 CF 스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치, 그날엔…] 보랏빛 스카프와 정수기CF에 가려진 진보정치 '원석(原石)' 강금실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전 법무부 장관이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9 아시아미래기업포럼'에서 '기업이 미래다'라는 주제로 클로징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법무부 장관으로 이름을 날렸던 강금실 후보와 정치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오세훈 후보의 공통점은 기존 정치와 차별된 색깔이다. 거대 정당 서울시장 후보들이 개혁 이미지까지 갖추고 있으니 35세의 젊은 진보정치인은 관심의 뒷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 선거 결과도 그랬다. 오세훈 후보가 득표율 61.05%을 거두며 압승했다. 강금실 후보는 27.31%를 얻었다. 김종철 후보는 득표율 2.97%(11만7421표)를 얻는데 그쳤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대중에게 김종철의 존재를, 그의 정치 철학을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2006년 서울시장 선거 이후 그의 이름은 다시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졌다. 진보정치 분열의 역사와 맞물려 힘겨운 시간을 이어갔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 진보신당 후보로 서울 동작구을 지역구에 출마했는데 득표율 2.01%, 득표수 1758표에 머무르며 낙선했다.


당시 정치인 김종철의 경쟁자는 통합민주당 정동영, 한나라당 정몽준 등 대선주자급 정치인들이었다. 진보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산됐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승부였다.


[정치, 그날엔…] 보랏빛 스카프와 정수기CF에 가려진 진보정치 '원석(原石)'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0대에 정치와 인연을 맺었는데 그의 나이는 어느새 만 50세의 중년이 됐다. 그는 이제 차세대 주자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민망한 나이가 됐다. 멀리 돌아왔지만 그는 다시 기회를 잡았다. 김종철 대표가 이끄는 정의당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선거 때마다 반복된 민주당과의 단일화 논란, 국회 표결을 둘러싼 '민주당 2중대' 논란에서 벗어나 진보정당의 새로운 길, 다른 색깔의 정치를 선보일 수 있을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진보정치를 대표해 대선에 출마한 후보는 백기완, 권영길, 심상정 등이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1932년생,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1941년생,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1959년생이다. 대학교 학번을 기준으로 하면 심상정 전 대표는 78학번이다. 젊은 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는 진보 정당에서 1990년대는 물론이고 1980년대 학번의 대선후보도 없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쩌면 진보정치가 세대 교체에 가장 소극적인, 젊은 정치인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변화가 더뎠던 공간인지도 모른다.



90학번인 김종철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인 김종철은 진보정치의 도약을 견인한 인물로 남을 수 있을까. 그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한국정치 지형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형태로 재편될지 모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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