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감염위험·휴교령 '3중고'
유럽·북미 지역서 돌아온 유학생
기침 한번에 인종차별 욕설
이달초부터 항공권 예약 전쟁
의료체계 보면 우리가 선진국
유럽 중동서 경유항공편 취소
현지 남은 유학생들은 발동동
"왜 돌아오나" 불편한 시선도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식당에서 기침을 한 번 했는데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들었어요. 동양인이라는 이유였죠."
스위스 A 대학에서 호텔 경영을 전공하는 송모(23)씨는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당시 식당에는 현지 손님도 많았다. 그중 송씨 일행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송씨는 잔기침 한 번 때문에 다른 손님들로부터 고성과 욕설을 들어야 했다. "어차피 학교가 휴교해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었지만 그 사건이 결정적으로 귀국을 서두르게 만들었지요."
◆봉쇄령 속 유럽 탈출… '하늘의 별 따기' 한국행 티켓 = 송씨는 지난 24일 가까스로 귀국했지만 유럽에서는 재난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악화하고 있다. 송씨는 "인구 865만명의 스위스에서 1만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인접한 이탈리아에서 사망자가 수천 명이 나오고 전국 봉쇄령과 이동제한명령이 내려지는 등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프랑스 파리의 한 디자인스쿨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전날(25일) 귀국한 최지희(22ㆍ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씨는 두달 남짓 학교를 다니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최씨는 "지난 19일 학교가 휴교한 데 이어 프랑스 정부가 운영하는 파리 국제대학촌(기숙사)마저 퇴소를 권고했다. 한국에서는 어렵게라도 구할 수 있는 마스크를 프랑스에서는 처방전을 받아야 구입할 수 있는 등 감염 위험도 컸다"며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유학생을 중심으로 귀국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감염 위험도 있지만 인종차별이 심화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입국 과정은 순탄치 않다.
송씨는 "당초 이달 23일 모 중동 항공사를 통해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지만 해당 국가가 경유 항공편 착륙을 금지하면서 취소됐다"며 "대사관ㆍ유학원 등을 통해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뜨는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씨 역시 "한 차례 예약한 비행기가 취소돼 애를 먹었다"면서 "현지에서 티켓 예약이 어려워 대한항공 한국 지사로 전화를 해 예약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도 유럽ㆍ중동 국가들이 '경유 항공편'을 받지 않겠다며 항공편을 잇따라 취소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미처 귀국하지 못한 유학생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선진국이라더니 한국이 낫더라" = 귀국 유학생들은 공항 검역을 경험하면서 한국이 선진국임을 새삼 깨달았다. 발열과 인후통이 있어 공항에서 검체검사를 받기도 한 송씨는 "선진국으로 알던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이 감염병 확산의 공포 속에서도 훨씬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최씨는 "신속하고 투명한 코로나19 진단검사부터 마스크 공급까지 코로나19 대응에서 한국보다 선진적인 유럽 국가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입국 후 검역 과정에서부터 보건 당국으로부터 격리수칙과 개인위생수칙 등을 자세히 안내받았다. 송씨는 "다른 나라들은 사실 코로나19에 무대응하거나 안전불감증마저 느껴지는데 한국은 '코로나19를 이겨내자'라는 생각이 강하다"며 "마스크 착용과 손소독제 사용 등이 생활화된 시민들의 행동이 더 큰 확산을 막았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다만 유학생들의 귀국 행렬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최근 포털사이트 댓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귀국하는 교민과 유학생들을 향한 언어폭력이 늘고 있다. "이 시국에 왜 다시 돌아오냐" "한국이 싫어서 떠났으면 거기(체류 지역) 있어라" 등이다. 일부의 생각이지만 20대 청춘들에게는 생채기가 됐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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