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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삼청교육대' 한국사회에 민감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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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신군부 인권유린…박찬주 전 대장 발언 논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정치, 그날엔…]'삼청교육대' 한국사회에 민감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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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도 삼청교육대는 관심의 대상이다. 이번에도 박찬주 전 대장이 삼청교육대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논란이 증폭됐다 .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은 이유는 ‘삼청교육대’라는 단어 자체가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삼청교육대 사건은 우리 역사의 ‘우울한 그림자’이다.


신군부세력은 1980년대 사회정화사업을 명분으로 군경 합동작전인 ‘삼청작전’을 진행했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은 무시됐다. 계엄 상태라는 특수성도 반영된 결과다. 1980년 8월부터 1981년 1월까지 6만 여명이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체포됐다.


4만 명에 이르는 시민이 순화교육 대상자로 분류돼 군부대 내에서 삼청교육을 받았다. 불량배 일제 검거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3명 중 1명은 전과 사실이 없었다. 마구잡이 검거 의혹이 불거진 이유다.


삼청교육대의 순화교육은 고된 육체훈련의 연속이었다. 군인의 감시를 받으며 훈련을 이어갔다. 전방 사단에 근로봉사원으로 투입돼 노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삼청교육대원에 대한 처우는 처참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각종 폭력에 노출됐다.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쳐 후유증을 앓는 이들이 속출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이들 중에서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도 모른 채 매질과 학대를 당한 이도 적지 않다.


삼청교육 퇴소자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퇴소자 기록은 경찰에 인계돼 보호관찰과 수사 자료로 활용됐다.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쉽지 않았다. 가혹행위 후유증 때문에 몸과 마음의 병을 앓았다. 삼청교육대 출신에 대한 ‘의혹의 시선’ 때문에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다.


우리는 삼청교육대라는 단어가 이 사회에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찬주 전 대장이 삼청교육대 과정을 극기훈련이라고 표현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짓밟았던 사건, 이 사회를 야만과 공포의 공간으로 얼룩지게 했던 그 사건이 단지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누군가에게는 삼청교육대라는 단어가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공포로 남아 있다는 것을 헤아려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 그날엔…]'삼청교육대' 한국사회에 민감한 이유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자유한국당 영입이 보류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갑질 논란과 정계 입문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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