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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비밀의 목적/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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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목적이 없는 비밀을 갖고 싶은 적 있었어요. 그것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죽어 가는 나뭇가지를 한 번쯤 손으로 받쳐 주는 일이거나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 달팽이를 음지의 이끼 위에 놓아주는 일처럼 근사한 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대체적으로 비밀은 남루하고 가난하니까요. 그런데도 왜 사람들이 비밀을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지 당신은 아세요. 그것은, 견딜 수 없도록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비밀은 자신에게 드리는 예배 같은 것이거든요. 나, 목적 없는 비밀을 갖고 싶어요. 그것은 하루 종일 빗줄기의 개수를 세는 일이거나 구름의 긴 방랑을 응시하는 일, 우물이 키운 모래알이 사막 한복판으로 나아가는 일. 그래서 당신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눈을 갖게 되는 일. 당신은 부디 몰라야 하지만.



[오후 한 詩]비밀의 목적/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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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이건 당신한테만 들려주는 비밀인데요, 오늘 아침 우체국 옆 골목길에 새로 핀 개망초는 일곱 송이였구요, 달맞이꽃은 두 송이였어요. 그리고 나비 셋이 날아다녔는데요, 그중 하나는 꼬마부전나비였구요. 나비를 보니까 문득 당신 생각이 났어요. 10시 12분에도 2시 41분에도 2시 43분에도 당신 생각이 났어요. 실은 아무 때나 생각났어요. 그래서 아무 데나 걸어 다녔어요. 제가 사는 동네에는 미장원이 세 개 있구요, 분식집이 두 개, 문방구가 하나 있는데요, 문방구 앞을 지나갈 땐 갑자기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물고기들처럼 공중을 헤엄쳤어요. 정말이에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거예요. 우리 둘만의 비밀, 그런 거예요. 당신, 내 모든 비밀을 가진, 내 영원한 비밀이 된 당신과 나만 아는, 그런 비밀요. 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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