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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의 청경우독]경제는 성장한다는 데, 사람들은 왜 더 힘들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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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새 길 모색해야… 노동소득 분배율 개선·공공서비스 확대

[임철영의 청경우독]경제는 성장한다는 데, 사람들은 왜 더 힘들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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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시장경제는 효율적이다. 다만 개인의 이익 극대화가 사회의 이익 극대화로 연결되는 경우에만.'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시장의 작동원리는 무엇이고 그 와중에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압축해서 설명한 대목이다.


한국 경제가 이상 증세로 신음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많은 경우 이상 증세라고 자각하지 못할 정도니 이미 우리네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이상 증세는 이렇다. 경제는 성장한다는 데 사람들은 전보다 왜 더 힘들어하는가.

현상은 크게 네 가지다. 경제 성장률이 과거보다 낮아졌고, 소득의 분배가 과거보다 불평등해지고 굳어지고 있으며, 버는 돈이 같아도 예전보다 더 바쁘고, 돈 쓸 데는 많아졌다. 결혼, 출산, 교육, 일자리, 노후 등 삶의 불안요소도 늘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열한 현상은 사실 한국 경제에만 드리운 이상 증세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적어도 20~30년 된 저성장의 공포가 그렇고, 과거보다 불평등이 굳어지고 있는 것이 그렇다. 더욱이 시장의 실패는 잦아졌고 정부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스티글리츠와 같은 경제학자는 진즉 작동했어야 할 시스템이 적절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는 그간 경제ㆍ사회적 문제를 두고 시장이 실패한 결과인지 정부가 실패한 결과인지 따져 물어왔다. 그러나 이 같은 물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등 역대급 위기는 시장을 대표하는 '대기업' 특히 금융의 실패이면서, 민간의 사익추구가 사회 전체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키워드는 정부의 역할이다. 1871년부터 2000년 1월까지 주가와 기업의 이익을 통시적으로 비교 분석해 '자산 가격의 경험적 분석'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교수 역시 '자본주의 경제는 규제가 없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정부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든 효율적인 분배를 위해서든 자본주의 시스템 혹은 시장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았다.


'자본주의 경제는 규제 없으면 작동 못한다'
정부 역할 내세운 경제이론 바탕
한국경제 현주소·새로운 길 모색


김태일 고려대 교수가 쓴 '한국경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는 경제학자 스티글리츠ㆍ실러의 이론과 진단을 따른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전자는 한국 경제 성장의 역사와 글로벌 경제의 흐름, 후자는 한국 경제의 현주소와 새 길을 모색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1부가 텍스트(text)라면 2부는 콘텍스트(context)다.


그는 우선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절대 명제로 여겨온 수출 증가→투자ㆍ일자리 증가→내수 증가로 이어지는 고리가 끊겼다고 진단한다. 수출주도 전략이 과거 고도성장을 이끌었고 지금도 기여도가 크지만 고용과 투자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민간 기업에 무작정 투자 확대를 강요할 수도 없고, 수출에 편중해 지원한 효과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니 이른바 수출주도형을 내수주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수출은 민간이 알아서 하도록 두고 정부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내수를 일으키는 데 힘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내수가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소득이다. 소득 대비 소비의 비중이 높은 중산층 이하의 소득을 높여야 소비가 늘고 늘어난 소비는 내수 성장으로 이어진다.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단체가 이미 노동소득의 증가가 소비증가, 내수 진작,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강조해온 이유다.


문제는 갈수록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노동 소득 분배율은 한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상승했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다만 서구의 경우 노동소득 분배율이 악화된 배경에 '탈산업사회'의 영향이 컸던 반면 한국은 정부의 제도와 정책이 미친 영향이 컸던 만큼 반대로 정부의 노력으로 노동소득 분배율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소득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 서비스업 구조조정은 선결과제다. 한국의 서비스업은 고용 비중이 70%를 차지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산출 비중이 60% 수준이다. 전통적인 수출 중심의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치킨가게로 대표되는 저숙련 서비스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진 탓이다. 가난한 자들의 '치킨게임'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저자는 정부가 무엇보다 선진국에 비해 빈약한 공공 서비스 분야를 확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서비스업 내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인 의료와 법률서비스의 '지대(rent)'를 줄여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서비스 분야를 강화하고 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한다면 편중된 서비스업의 문제를 해소하고 중하위층의 노동소득을 끌어 올림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책 '한국경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는 이 밖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최저임금과 기본소득 문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격차 등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담았다. 저자는 내내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시장)'과 함께 스티글리츠의 '보이는 손(정부)'은 시장의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규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 책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에게 유용한 경제해설서가 되기를 희망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주목하고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수년 전부터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강조해온 배경을 소개한다. '많은 국가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불평등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경제성장을 저해할 뿐 아니라 시장경제에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성장 방식을 바꿔야 한다.'


[임철영의 청경우독]경제는 성장한다는 데, 사람들은 왜 더 힘들어하는가 김태일 지음/코난북스/1만6000원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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