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 열흘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인규 “논두렁 시계…술자리서 비보도 전제로 한 말”
문 대통령 회고록 ‘운명’ 검찰 수사 비판에 박반하기도
2009년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맡았던 이인규 변호사가 9년 동안 재직한 로펌을 6월 말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변호사가 로펌을 그만둔 시점은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국정원 개혁위)가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수사와 관련해 이른바 ‘논두렁 시계’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나선 시점과 맞물린다.
10일 시사저널에 따르면 이 변호사는 로펌 퇴사와 동시에 해외로 나갈 준비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매체는 법조계 안팎에선 이 변호사의 출국이 사실상 도피성 출국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 개혁위가 국정원 적폐 중 하나로 보고 있는 ‘논두렁 시계’ 사건은 노 전 대통령 수사가 한창이던 2009년 5월13일 SBS 보도를 시작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회갑 선물로 1억 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선물을 받았는데, 검찰이 이에 관해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아내가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후 노 전 대통령 쪽은 해당 진술은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해당 보도 직후 대검은 “그 같은 진술을 확보한 바 없으며, 악의적 언론 제보자는 반드시 색출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색출되지는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보도 이후 열흘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이 변호사는 2015년 2월 경향신문 측에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씨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으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 변호사는 해당 매체를 통해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시계 문제가 불거진 뒤 (권 여사가) 바깥에 버렸다고 합디다’라고 답한 게 전부”라며 “논두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국정원이) 말을 만들어서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개입 근거에 대해서는 “(언론까지) 몇 단계를 거쳐 이뤄졌으며 나중에 때가 되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 내용을 과장·왜곡해서 언론에 제시했다고 이 전 부장이 폭로했다. 이러한 국정원의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로 관련 사실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관련 상임위를 긴급소집해 이 문제를 철저히 가리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매체를 통해 검찰 수사의 당위성을 주장한 이 변호사는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회고록 ‘운명’의 일부 내용을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회고록 내용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 “공손한 말투로 어떻게 건방질 수가 있겠느냐”며 “사실은 책에 적힌 대로 공손하게 했지만 수사팀 자체에 대한 반감 탓에 그렇게 느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한겨레' 기자가 펴낸 책 ‘검사님의 속사정’에 따르면 이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년 뒤 사석에서 “평생을 검사로만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저승에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 왜 그랬느냐 (그런 선택을 해서 검사로서 삶을 그만두게 한 것을)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빚을 갚으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검찰을 떠날 때도 “수뢰사건 수사중 예기치 못한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수사팀에 대해 사리에 맞지 않는 비난과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한 비판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이 변호사는 지난달 10일 국정원 개혁위와 관련해 JTBC를 통해 “조사하면 그 때 얘기하겠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논두렁 시계 보도’를 국정원이 주도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술자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한 말이었다”면서 사실 관계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아시아경제 티잼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