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 취임 후 첫 외국 순방국으로 사우디 아라비아를 선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권에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다. 지난 해 대선 당시 무슬림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과 입국 금지를 공언하던 호전적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취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방문 이틀째인 21일(현지시간) 리야드에서 열린 ‘이슬람 아랍-미국 정상회담’ 기조 연설을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 척결을 위한 상호 협력을 강조했다.
이날 회의는 사우디는 물론 이슬람권 55개국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참석,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메시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테러와의 싸움은 다른 믿음이나 종파, 문명 간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테러리즘이 전 세계에 만연돼 있지만 평화로 가는 길은 바로 여기 신성한 땅(중동)에서 시작된다”면서 “미국은 여러분 편에 기꺼이 서겠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은 여기(중동)에 가르치러 온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숭배하라고 말하러 온 게 아니라 상호 공유된 이익과 가치에 기반을 둔 파트너십을 제공하러 온 것”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물론 그는 “여러분들의 기도 공간에서, 커뮤니티에서, 신성한 땅에서, 그리고 이 지구에서 그들(테러리스트)을 몰아내야한다”며 적극적인 행동을 주문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연설 기조는 이슬람권과의 협력에 방점을 뒀다.
CNN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기간 즐겨쓰던 ‘과격한 이슬람 테러리즘’이란 표현을 자제한 것에도 주목했다. 이는 테러리즘에 대한 공동전선을 내세워 일반 무슬림 국가들을 미국의 우군으로 끌어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앞서 열렸던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 정상과 한 정상회담에서도 테러리즘과 극단주의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GCC 회원국은 사우디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오만 등이다.
전날 사우디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도착하자마 사우디와 이슬람권과의 화해를 위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이 최고 훈장인 압둘아지즈 국왕 메달을 수여할 때 공손히 머리를 숙이기도 했다. 또 왕궁 환영연회에선 직접 일어나 몸을 흔들며 사우디 전통 칼춤을 함께 추기도 했다.
사우디 국왕에 머리까지 숙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변신에 미국내 지지층에선 불만이 나왔다. 트럼프의 오랜 측근인 로저 스톤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9·11 테러를 재정 지원한’ 사우디에 책임과 배상을 요구했어야 했다면서 “(훈장을 받는) 장면을 보니 토할 것 같았다”고 비판했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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