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국내 백혈병 환자 단체인 한국백혈병환우회 회원 수십여명이 한국노바티스가 있는 서울 중구 연세세브란스 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들은 한국노바티스가 의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해 글리벡을 복용하는 국내 수천명의 암환자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규탄했습니다.
글리벡은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가 개발해 2001년 출시한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입니다. 글리벡은 암세포만 골라서 파괴하는 표적항암제이기 때문에 기존 약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생존율이 크게 올라가 기적의 백혈병 치료제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국노바티스는 자신들의 약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2011년부터 5년 동안 의사들에게 26억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적발됐습니다. 이로 인해 대표이사 등 전현직 임직원 6명이 불구속 기소되는 처분을 지난해 받았습니다.
리베이트가 드러나면서 보건복지부도 한국노바티스가 판매하는 글리벡에 건강보험 급여를 정지하는 행정처분을 내릴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만약 정부가 글리벡 급여를 정지하면 자신들이 부담했던 한 달 약값이 기존 10만~20만원에서 10배 이상 증가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생긴다고 주장합니다. 정부가 글리벡의 경우에는 예외를 적용해 건강보험 급여 적용 정지 처분 대신 과징금 처분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은영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처장은 “글리벡 급여정지는 인권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치료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아 급여 정지 대신 과징금으로 대신해줘야 한다”며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통해 리베이트 연동 약가인하제도와 무거운 징벌적 과징금제도 도입을 제안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은 글리벡에 대한 이런 요구가 자칫 불법을 저지른 한국노바티스를 돕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부담스럽습니다. 한국노바티스가 글리벡 급여정지 대신 과징금 처분을 받으면 결과적으로 회사에는 이익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글리벡의 특허만료로 시중에 여러 복제약이 출시됐기 때문에 정부가 글리벡 급여정지를 포함해 한국노바티스에 강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관계자는 "글리벡의 경우 이미 2013년에 특허가 만료되어 30개가 넘는 복제약이 출시돼 있다"며 "환자들의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노바티스사에게 특혜를 준다면 이는 정부의 의약품 정책 전반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백혈병환우회 측은 현재 우리나라에 시판중인 글리벡 오리지널약과 복제약은 분자식은 동일하나 제형이 달라 피부 발진과 설사, 근육통 등의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글리벡 대신 복제약을 처방받은 일부 백혈병 환자들의 경우 심각한 부작용으로 응급실을 찾았다는 사례도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결국 한국노바티스와 리베이트를 받은 일부 의사들의 불법적인 행위로 인해 백혈병 환자들은 불안에 빠졌고 정부도 큰 고민에 빠진 상황입니다.
특히 한국노바티스의 경우는 2001년 글리벡을 한국에 도입할 당시 약가를 둘러싸고 정부와 다툼이 생기자 환자들에 대한 약 공급을 중단하는 비윤리적인 결정을 해 지탄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우여곡절 끝에 협상을 마무리했지만 피해는 환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법 리베이트로 환자들에게 다시 피해를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은영 사무처장은 “ 환자단체들과 글리벡 복용 환자들의 요구가 결과적으로 불법 리베이트 범죄를 저지른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를 돕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 더 큰 분노를 갖게 한다"며 "이번 집회로 노바티스는 물론 다른 제약사들도 불법 리베이트를 저지르면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디지털뉴스본부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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