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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나'라는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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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1만5000여건의 결혼 기록을 검토해보니, 이름 첫 글자가 같은 사람들의 결합이 눈에 띄게 높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조엘(Joel)은 제니(Jenny)와, 알렉스(Alex)와 에이미(Amy), 도니(Donny)와 데이지(Daisy) 같은 경우 말이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자신의 저서 '인코그니토'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그는 책에서 “그 사람에게서 자신과 같은 부분(이름의 첫 글자)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떠올린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무의식적 자기애' 내지는 익숙한 것을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안락감'으로 해석한다.”고 했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남자는 원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인생에서 ‘사랑’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사랑하고픈 여자를 만났고, 여자가 모델 케이트 모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과거로 돌아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케이트모스 이야기를 꺼낸다. 여자는 반색했고 둘은 연애의 커튼을 부드럽게 열어낸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의 변형일 수 있겠다. 남녀 관계 뿐이겠는가. 자녀에 대한 극진한 사랑 역시 나의 분신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타임지의 수석 편집자이자 작가인 제프리 클루거는 ‘옆집의 나르시시스트’라는 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대표적인 나르시시스트로 꼽았다. 그는 ‘트럼프 모기지’ ‘트럼프 파이낸셜’ ‘트럼프 초콜릿’ ‘트럼프 생수’ 등의 이름을 붙인다. ‘트럼프 대학’도 있다. 상대방을 공격하고 막말을 일삼는 것도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본인이 가장 소중하기 여기는 ‘자기’와 결을 달리 하는 타인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응징 밖에는 대응책이 없다고 여기는 것 아닐까.


이처럼 지나친 자기애는 ‘나’가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고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된다. 때로는 지향하는 가치도 '나'에 우선하지 못한다. 결국 내가 잘돼야 한다는 의식 혹은 무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백범 김구 선생은 상하이임시정부를 찾아가 “문지기라도 시켜달라”고 했다는데, 지금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는 ‘나의 존재감’ 찾기에 골몰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자기애는 끊임없이 벗어나보려 해도 완전히 떨쳐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나 멀리 떨어질 수 있느냐만 있을 뿐이다. 이제는 그렇게 말해도 상투적인 소리로 들릴 뿐이겠지만, 그럼에도 민주사회에서 공직은 국민의 심부름꾼이거나 머슴이라는 게 본질이다. '나'만 잘 돼봤자 '우리'는 별 볼 일 없게 된다.


제프리 클루거의 말이 와 닿는다. "자신감, 야망, 매력, 자기애는 전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복잡한 교향곡에서 꼭 필요한 화음들이다. 제대로 연주하기만 한다면 이러한 화음은 풍부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면 그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자아의 북소리에 지나게 않게 된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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