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눈]'영화감독-여배우' 불륜의 역사…우디 앨런, 로베르토 로셀리니 그리고 홍상수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동거 중인 여인이 전남편과 사이에서 입양한 딸,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 사내는 불운하게도 사업가가 아닌 영화감독이었다. 여기서 방점을 그의 직업에 찍은 까닭은 범죄 사실과 관계없이 이 관계는 그가 작품을 하는 내내 꼬리표처럼 달라붙어 호사가들의 말잔치에 좋은 재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며, 실제 20년이 넘도록 그의 행보에는 늘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불륜에 대한 지탄이 끊이질 않아 왔음에 기인한다. 우디 앨런의 치명적 스캔들은 작품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이는 그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거침없이 영화에서 풀어내곤 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인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김민희의 소식에 일부 네티즌은 축하에 앞서 "다음엔 상이 아닌 벌을 받길"이란 저주 섞인 비난을 던져 다수의 공감을 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가정을 버린 영화감독의 행보는 여배우의 빛나는 트로피 위에 암흑처럼 드리워졌고, 이들이 빚어낸 작품은 그 서사가 투영하는 현실과 유사성을 들어 싸잡아 매도됐지만, 역으로 개봉을 앞두고 영화가 궁금해졌다는 반응도 등장했다.
관심을 애정의 반증이라 가정하자면 대중은 유명인의 연애를 반기고, 그 관계의 자극성에 매료되며, 그로인해 생겨나는 크고 작은 잡음과 파국에 열광한다. 앞서 언급한 우디 앨런의 충격적 스캔들이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이 부부의 데이트 장면이 톱스타 커플의 밀회 못지않게 파파라치의 표적이 되는 것은 그 열광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이에 우디 앨런은 한 인터뷰에서 "이제 면역이 생겨 괜찮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는데, 이를 지켜보는 한 여인의 심정은 분명 일그러지고 있었을 것이다. 세기의 스타, 미아 패로의 이야기다.
연인의 양녀와 사랑에 빠진 남자
미아 패로는 스타덤에 오른 20대 초반, 자신보다 30살이 많은 대스타 프랭크 시내트라와 결혼했지만 2년여의 부부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후 독일 출신의 유명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결혼,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세 명의 한국인 아이들을 입양했다. 그녀는 한 가정이 입양할 수 있는 외국 아동을 2명으로 제한한 입양법을 직접 발로 뛰며 설득하고 청원해 철폐하는 데 성공, 직접 서울에 와 일찍이 인연을 맺은 소녀 '순이'를 자신의 딸로 맞아들였고 자신이 낳은 친자식보다 순이를 더욱 아끼고 사랑했다.
프레빈의 외도로 두 번째 결혼도 파경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맨해튼'의 감독 우디 앨런과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되는데, 결혼은 하지 않되 맞은편 아파트에 살며 서로의 집을 오가는 것으로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이때 앨런은 패로 몰래 순이에게 관심을 쏟게 됐고, 어느 날 앨런의 아파트를 방문한 패로가 그의 책상에서 순이의 나체가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발견하며 추궁한 끝에 이들의 관계 역시 끝을 맺는다. 분노한 패로는 앨런의 추행을 언론에 낱낱이 공개하며 복수에 나서는데 이즈음 개봉된 두 사람의 영화 '부부 일기'에서 남편이자 교수로 등장한 우디 앨런은 아내인 패로를 두고 젊은 대학원생과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선보여 미디어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고, 영화 속 우디 앨런이 연인이 된 대학원생의 과제 중 한 문장이 특히 좋았다고 말하며 읊조린 대사는 기시감마저 들 정도였다.
"인생은 예술을 모방하지 않는다. 인생은 쓰레기 같은 TV 프로그램을 모방한다."
패로의 분노와 언론의 집중포화에도 불구하고 앨런은 순이와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나섰고, 두 사람은 1997년 38년의 나이 차와 도덕적 비난을 뒤로하고 베니스에서 비밀리에 결혼해 오늘까지 다정한 부부애를 과시하고 있다.
영화라는 매혹에 가정을 저버린, 은막의 스타
예술적 감흥에 인생을 내던진 스타의 과감한 스캔들 속 불륜도 빠질 수 없다. 스웨덴이 할리우드에 준 선물, 잉그리드 버그만은 '카사블랑카'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라 히치콕 감독과 콤비를 이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바쁜 스케줄 틈에 잠시 시간을 내 극장을 찾은 그녀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무방비 도시'와 '전화의 저편'을 본 뒤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 못 하고 편지를 써내려갔는데, 그 내용이 사뭇 저돌적이라 로셀리니 감독은 어느 짓궂은 팬의 장난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로셀리니 씨, 당신의 영화 ‘무방비 도시’와 ‘전화의 저편’을 봤습니다. 대단한 작품이었어요. 만약 영어를 아주 잘하고, 독일어는 아직 잊지 않았으며, 프랑스어는 아주 잘하진 않지만 아는 이탈리아어는 오직 Ti amo(당신을 사랑해)만 알고 있는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하다면, 당장 이탈리아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편지에 화답한 로셀리니 감독을 위해 이탈리아로 달려간 버그만은 그와 함께 영화를 찍으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녀에겐 21살 때 결혼한 치과의사 남편과 딸이, 그에겐 두 번의 이혼 경력과 현재 동거 중인 '무방비 도시'의 히로인 안나 마냐니가 있었지만, 사랑에 눈먼 두 예술가 앞에 가족과 연인은 구속의 사유가 될 수 없었다.
청순한 성녀의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그녀의 불륜 스캔들에 할리우드는 배신감에 휩싸였고 급기야 히치콕 감독은 그녀를 다신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둘은 멕시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7년을 함께 하면서 ‘스트롬볼리’, ‘유럽’51’,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네오리얼리즘의 기념비적 작품을 내놓았지만 흥행에선 참패를 거듭했고, 다른 감독과의 작업을 반대한 로셀리니에 지친 버그만이 할리우드 영화 '아나스타샤'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세기의 스캔들은 허무히 끝을 맺었다.
긴 침묵 속 예술적 성취로 응수한 두 남녀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통해 감독과 배우로 호흡을 맞춘 홍상수와 김민희는 지난해 6월 촬영을 통해 연인관계로 발전했다는 보도로 삽시간에 불륜의 주인공으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추측성 보도가 줄을 이으며 입에 담기 힘든 망언과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너절한 이야기가 쏟아졌지만, 당사자들은 비난과 폄훼에도 침묵을 지켰다.
"불륜이란 걸 다루게 되면 가장 첨예하게, 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 속에 있는 욕망과 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이미 기존에 있는 제도 사이의 충돌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소재가 아닌가 생각해요."
과거 영화 ‘강원도의 힘’ 개봉 당시 진행된 라디오 인터뷰에서 홍상수 감독은 작품 속 유부남의 불륜에 대한 질문에 욕망과 제도의 충돌이 첨예하게 보이는 소재라고 답한 바 있으며,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개봉 후 진행된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요즘 무슨 생각하고 계시냐는 물음에는 "죽어도 된다, 안달하지 말자. 두려움보다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의 아내는 지난해 7월 MBC와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절대 이혼 안 합니다"라며 항간의 이혼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 남편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는 "김민희 씨랑 어디 있겠죠"라고 답해 의혹에 머무르던 스캔들을 확증 단계까지 끌어올렸으나 두 사람은 작년 11월 정식으로 이혼신청을 접수해 현재 법리적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며 현지에서 다정한 모습을 선보인바 있던 두 사람의 패션은 스캔들 보도 이후 무수한 패러디를 낳았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김민희가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자 이번엔 두 사람을 넘어 자기 복제적 서사를 담은 작품에까지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여전히 침묵했으되 시상식에서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자 트로피를 꼭 껴안은 김민희가 "제가 받는, 제가 지금 느끼는 이 기쁨은 당연히 홍상수 감독님 덕분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나지막이 밝힌 소감은 그들을 둘러싼 소문 위에 무형의 성취로 내려앉았다.
예술은 경험적 현실과 무관하게 고유한 미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을까. ‘예술이 아닌 쓰레기 같은 TV 프로그램’을 모방한다던 우디 앨런의 삶에 대한 자조적 냉소에서 되려 우리는 자신에겐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남성감독들의 불륜 스캔들은 끝났거나, 진행 중이거나 모호한 가운데,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비난과 모멸의 공론에 당자는 스트레스와 함께 자라난 항체를 통해 침묵을 무기로 더욱 슬기로운 대처를 펼치지 않을까 하는 공상을 덧대어본다. 화려한 영화제가 막을 내린 후, 그들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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