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공급업체 '녹십자수의약품'
이름·로고까지 비슷해 계열사 오해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구제역 '물백신' 논란이 확산하면서 국내 제약업계 2위인 녹십자가 때 아닌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구제역 백신을 제조해 축산농가에 공급하고 있는 제약사 '녹십자수의약품'이 녹십자그룹의 계열사로 잘못 알려지면서 불신의 시선이 녹십자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녹십자수의약품은 녹십자와의 오래 전 인연(?) 때문에 회사명에 '녹십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녹십자그룹의 계열사도, 관계사도 아니다. 전문 동물의약품 제조사의 하나일 뿐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축산농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구제역 백신은 녹십자수의약품, 고려비앤피, 대성미생물연구소, 중앙백신, 코미팜 등 국내 동물용 의약품 제조사 5곳에서 공급하고 있다. 이들 제약사에서 만든 구제역 백신은 영국 메리얼사(社)에서 만든 완제품('01 마니사', 'O 3039') 벌크를 국내로 들여와 소분(小分)한 것으로, 메리알사의 완제품과 동일하고 국내 생산 회사별 차이도 없다.
구제역 백신을 5개 제약사에서 제조하다 보니 전체 물량도 각 사별로 20%씩 나눠 공급하고 있다. 축산농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구제역 백신 5개 중 1개는 녹십자수의약품에서 제조한 약품인 셈이다. 그런데 백신 접종을 해 항체형성률이 높은 농장에서도 구제역이 속출하면서 물백신 논란이 확산됐고, 백신을 공급한 기업들의 이미지도 자연스레 갉아먹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특히 녹십자수의약품으로 인해 대형 제약사인 녹십자가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 '녹십자'라는 상호가 같은 데다 녹십자수의약품의 구제역 백신 제품에 붙어 있는 '녹색 십자 모양'의 로고가 녹십자 CI와 거의 흡사해 얼핏보면 '녹십자 계열사에서 만든 백신'으로 읽히기 십상이다. 심지어 CI의 글씨체까지 똑같다. 녹십자 관계자는 "(녹십자수의약품)이름이 비슷해 가끔 항의 전화가 걸려 온다"며 "구제역 백신 효능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전혀 관련 없는 녹십자에 불신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녹십자수의약품은 가축용 백신을 제조하는 동물약품 전문 제약사로 인체용 백신을 전문 생산하는 녹십자와는 현재 전혀 관계가 없다. 녹십자수의약품이 '녹십자'라는 상호를 사용하고 있는 배경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녹십자의 전신인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1971년 녹십자로 사명 변경)는 1969년 동물의약품 연구를 위해 회사내 수의약품부를 발족했다. 그러나 3년 뒤인 1972년 인체용 백신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수의약품부의 매각을 결정했고, 1973년 1월 녹십자수의약품이라는 독자 제약사로 재탄생했다. 매각은 이뤄졌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만큼 녹십자수의약품이 '녹십자'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이후 녹십자수의약품은 40여년간 가축용 백신과 치료제, 가축 배합 사료 등을 생산ㆍ판매하며 연매출 300억원 규모의 중소 제약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녹십자'라는 회사명을 함께 사용하면서 '물백신 파장' 등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녹십자 관계자는 "양사가 뿌리는 같다고 볼 수 있지만, (녹십자수의약품)40여년 전 떨어져 나가 이제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다"며 "다만 40년 넘도록 전혀 간섭하지 않다가 구제역 물백신 논란 때문에 녹십자수의약품에 회사 이름이나 로고를 바꿔달라고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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