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차이나타운'이었습니다. 우리말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렸습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거리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지요. '유커(游客)', 그들이 오히려 이 거리의 주인 같고 우리가 나그네처럼 여겨졌습니다. 중국어를 공부하는 이들에겐 좋은 교실이었을 것입니다.
못마땅하기도 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표가 나게 자신들을 드러낼까.' 말과 행동이 촌스럽다고, '매너'가 세련되지 못하다고 흉도 자주 보았습니다. 우리 관광 수지를 맞춰주는 고마운 손님들인데 말입니다. 언필칭(言必稱), '고맙지만 매력 없는' 외국인들이란 결론에 이를 때가 많았습니다.
아무튼, 중국 관광객들은 명동 풍경의 일부였습니다. 이곳을 한국 '관광1번지'로 만들어 준 사람들이지요. 인터넷 공간 어디쯤에 실없고 억지스런 '댓글'을 남기고 싶어집니다. "그 사람들, 제 나라 대사관이 있는 동네라서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 건 아닐까 몰라. 그래서 그렇게 스스럼없이 명동을 활보하는지도 모르지."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했던가요. 중국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두 나라의 관계악화로 관광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소식이 괜한 말은 아닌 모양입니다. 태평성대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나라 형편이 말이 아닌지라 자꾸 한숨만 나옵니다. '아, 그 흔하던 중국관광객마저…!'
동시에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정치외교적인 돌발변수만 아니면 명동의 활황(活況)은 영원할 수 있는 걸까?' 저는 쉽게 '예스'라고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의구심이 꼬리를 물기 때문입니다. '한중관계만 원만하면 중국관광객들은 언제나 줄을 설까?' '그들에게 한국은 꿈의 관광지일까?'
그것은 결국 '서울이 정말 좋은 상품인가' 하는 문제의 답을 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도시 브랜드'의 품질을 가늠하는 잣대 역시 고객의 '충성도'에 있으니까요. 반복 구매 의사가 일어나지 않는 물건이라면 명품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꾸 눈에 밟히고 생각이 나서 공항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이름이어야 하지요.
서울을 다녀간 중국인들 중에 두고두고 서울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파리나 프라하, 교토 혹은 홍콩을 꿈꾸는 것처럼 말입니다. 기분 좋은 기억은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게 됩니다. 자꾸 생각나는 것들에는 무엇인가 중독성분이 들어있게 마련이지요.
명동(혹은 서울이나 한국)의 어떤 성분이 이곳에 왔던 사람들을 추억의 포로가 되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봅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성당의 종소리일까요. 화장품 가게나 패션매장의 미인들일까요. '치킨과 맥주' 혹은 떡볶이의 매운 맛일까요. 한류 스타들의 미소가 눈부신 백화점이거나 면세점일까요.
쉽게 변치 않고 바뀌지 않는 것들이 많아야 합니다. 건물과 조형물이 변하는 것이야 어쩌겠습니까. 패션과 유행의 변신이야 뭐라겠습니까. 인심이 한결같아야지요. 시대는 변해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명동에 더 많아져야 할 것은 '마약 김밥'이 아니라 인상적인 '공감과 소통'입니다. '감동'입니다.
중국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부터 버려져야 합니다. 이를테면, 중국물건은 싸구려의 대명사거나 엉터리라는 고정관념. 그런 생각의 소유자라면 자신이 얼마나 '저렴한 중국'만 가까이 했는지 짚어볼 일입니다. 어째서 중국인들도 먹지 않고 쓰지 않는 물건이 이땅에는 그렇게 넘쳐나는지 따져볼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의식주(衣食住)'의 일정부분이 그들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지요. 저는 궁금합니다. '일본은 중국 최고의 것을 찾으려 애쓰는데, 우린 왜 등외품(等外品) 수입도 마다하지 않을까?' 그 결과, 온 국민이 중국 상품 전체를 불신합니다. 중국인을 업신여깁니다. 이런 현상은 관광산업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짝퉁과 불량품의 나라, 속임수가 많은 나라,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나라…. 그런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공손한 자세로 진심어린 서비스를 다하기란 어렵습니다. 안목도 없고 수준도 낮은 사람들이니 적당히 대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만연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쁜 순환'의 고리입니다.
국제관계는 급변하지만 상대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시각과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와 중국 사이에 '사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질시(疾視)와 몰이해(沒理解) 아닐까요. 서로가 서로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유커'들 발걸음이 뜸해진 이때, 그들의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을 지혜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반성의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웃나라라고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는 것 천지입니다.
'중국'은 거대한 책입니다. 쌓으면 태산, 늘어세우면 만리장성일 것입니다. '나는 몇 권 아니 몇 쪽이나 읽었을까' 가만히 헤아려봅니다.
윤제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