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해당 농가 접종 제대로 안해"
농가 "접종 기피 이유없다…물백신 탓"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사상 처음으로 A형과 O형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정부가 추진해왔던 방역체계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방역체계의 핵심인 백신접종을 두고 정부는 농가 탓, 농가는 정부 탓을 하면서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국 구제역 백신항체율은 97.5%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구제역 방역체계는 백신접종에 중점을 두고 이뤄져왔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구제역 백신접종 청정국 인증 획득을 위한 조건으로 백신접종군에서 80% 이상의 방어면역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의 소 농장 가운데 10%를 모집단으로 설정, 80%의 백신항체율이 형성돼 있는지를 검사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항체 여부 검사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연간 계획을 수립하고 지자체 방역기관과 검역본부에서 실시하고 있다.
한우와 젖소 등은 농가별 1두 검사를 원칙으로 하는데 도축장 또는 농장에서 무작위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하지만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 인근 농가에서의 항체형성률은 OIE에서 제안하는 백신 항체형성률인 80%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백신접종에 대한 정부의 통계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보은에서 11개 젖소농가를 조사한 결과 4개 농가는 80%를 넘지 않았고 1개 농가(72두 사육)에서는 아예 백신접종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읍도 한우농가 13곳 가운데 80% 미만 농가는 6개이며 1개 농가(1두 사육)에서는 항체가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농가에서 제대로 백신접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놨다.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농가에서 젖소의 원유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송아지 유산 우려 때문에 백신접종을 꺼리고 있다”면서 “백신 구매 기록을 확인한 결과 1회 접종하는 백신은 구매하지만 2~3회 접종하는 백신을 구매하는 농가는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농가에서는 구제역 백신의 효력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구제역 감염 시 사육 가축을 전부 살처분해야 하며 백신접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면 보상금도 삭감되기 때문에 백신접종을 기피할 이유가 없다며 구제역 백신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 농장별로 한 마리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백신항체검사를 6마리로 늘리고, 사육두수나 성별, 연령 등을 고려해 농장에서 검사 표본을 추출하기로 했다.
검역당국 관계자는 “기존에 정부가 갖춰왔던 방역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점을 인정한다”면서 “앞으로는 백신접종 여부를 전문가가 조사하는 등 방역체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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