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무자비한 '마약과의 전쟁'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가 최근 에이즈 바이러스(HIV) 퇴치에 나섰다고 미 경제매체인 쿼츠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필리핀 보건부(DOH)는 내년부터 전국 학교에 남성용 피임기구(콘돔)를 나눠주는 한편, 이와 관련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필리핀 내에서 HIV 감염 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비영리기관인 휴먼라이트워치의 조사에 따르면 올들어 필리핀은 하루에 26명의 HIV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2년까지만 해도 이 수는 하루 10명에도 못 미쳤다. 4년만에 감염자 발생이 두 배로 늘어난 셈. 피임기구를 구하기 힘들고 학교 교육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필리핀은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남성용 피임기구 사용률이 가장 낮은 국가다. 남성간의 성관계에서 44%만이 콘돔을 착용한다. 유니세프는 10대 HIV 감염자 수가 오는 2030년에는 현재(연간 25만명)의 약 2배인 연간 40만명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발효된 '출산보건법'의 지지자로, 지난 7월 연설에서 출산보건법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출산보건법은 저소득층의 가족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콘돔과 피임약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법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교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시행이 지연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교계도 HIV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는 등 분위기가 바뀌어가고 있다. 지난 2일 필리핀 천주교주교회의(CBCP)는 젊은 층에서 HIV 감염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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