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개봉하는 영화 '국가대표2'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변신한 수애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철갑 같은 보호 장비를 두르고 빙상 위를 질주한다. 스틱을 자유자재로 휘젓더니 빈 공간으로 날카롭게 퍽을 날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민첩하고 재치가 넘친다. 여린 얼굴이지만 수비에서도 몸싸움을 마다않고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화 '국가대표2'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변신한 배우 수애(37)의 활약상이다.
그녀는 운동신경이 좋다.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활동했다. 영화 '심야의 FM(2010년)'에 출연해 아이들을 납치한 한동수(유지태)의 택시를 뒤쫓는 신에서 10㎝ 하이힐을 신고도 100m를 전력 질주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카메라 감독이 그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계속 NG가 났다. 열 차례 반복된 전력질주에도 얼굴색 하나 바뀌는 않는 그녀를 보고 유지태(40)는 "진짜 빨리 뛴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여전히 운동에 빠져 있다. 최근에는 테니스를 시작했다. 격한 운동에서 재미를 느낀단다. 그런데 그동안 액션영화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았다.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2010년)'이 유일하다. 충무로가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다. 수애가 작품을 고르는데 있어 심사숙고해 내린 결론이다. 그녀를 지난 29일 삼청동 카페 슬로우파크에서 만났다. 수애는 "'국가대표2'의 원제가 '아이스 호케이(하키의 북한어)'였다. 지금처럼 '국가대표'라는 제목을 전면에 내걸었다면 부담이 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아도 국가대표를 연기하는 것이 어디 쉽나요. 괜히 도전했다가 한계에 부딪혀 상처만 받을 수 있어요. 신경 쓸 부분이 많잖아요. 국가대표인데."
그녀는 국가대표 에이스 리지원을 연기한다. 누구보다 날렵하고 다양한 기술을 구사한다. 어려운 동작이나 기술은 실제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대신 했다. 수애는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래도 에이스인데 운동을 많이 한 친구일 거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읽는데 반팔 티셔츠를 입는 장면이 몇 신 있더라고요. 팔뚝이 가녀리게 나오면 안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운동했어요. 견고해 보이고 싶었는데 잘 표현됐는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이번에 처음 스케이트 끈을 동여맸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자주 타지만 균형을 잡는 법부터 다르다. 앞으로 자신 있게 나가려면 주어진 3개월 동안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영화 초반에 강대웅 감독(오달수)이 아이스하키를 가르치면서 계속 넘어지는 장면이 나와요. 처음 스케이트를 탔을 때 제 모습이 그랬어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주위에서 스턴트맨이 따로 있으니까 살살 하라고 말렸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서 있는 자세부터 국가대표다워야 하잖아요. 몸에 멍이 들어도 일어나길 몇 번씩 반복했죠. 그 덕에 리지원을 연기할 수 있을 만큼 스케이트를 타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얼음이 벅벅 갈라지는 소리에 쾌감을 느끼고 있어요."
수애는 다른 배우보다 폭넓은 감정을 연기해야 했다. 리지원은 탈북자다. 북한에 두고 온 여동생 리지혜(박소담)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산다. 둘은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 조우한다. 그녀는 둘의 만남에서 나오는 감정이 강조되길 바랐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적힌 표준말 대신 북한말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김종현 감독(46)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의 결혼원정기(2005년)'에서 김라라를 연기하면서 북한말을 배우기도 했지만 동생과 떨어져 지내니까 감정을 쌓을 여지가 회상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북한말을 써야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이 진하게 묻어나올 것 같았죠. 그 마음을 표현하려고 촬영 전날까지 소담이를 만나지 않았어요. 어떤 교감도 없이 호흡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서로를 신뢰한 덕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국가대표2에서 다루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아오모리 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여자 아이스하키는 네 경기가 아닌 세 경기를 했다. 일본에 0-21, 중국에 1-30, 북한에 0-10으로 졌다. 영화에서는 모두 한 점 안팎의 박빙 경기다. 리지원은 1999년 탈북한 황보영에서 착안한 인물이다. 그는 북한과 경기에서 상처를 받았다. 경기 전 의례적 인사에서 신정란, 김봉련 등 친구들에게 외면당했고, 경기 중 한 선수에게는 욕설까지 들었다. 관중석 분위기 역시 싸늘했다. 민단과 조총련이 멀찌감치 떨어져 당시 한반도 분위기를 반영하듯 차갑게 맞섰다. 영화는 이런 디테일을 거의 그리지 않는다. 그저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몰두한다.
수애는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여자 아이스하키가 조명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열악한 현실에서 운동하면서도 2018년 평창올림픽 본선 자동 출전권을 받았잖아요. 그들이 '꿈의 무대'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고 멋진 승부를 펼쳤으면 해요. 우리 모두의 응원이 필요해요." 그녀는 이번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가더라도 여자 아이스하키를 계속 홍보할 생각이다. "현역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들과 함께 하며 비인기종목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고요. 여전히 열악하더라고요. 연습하면서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이렇게 가슴을 뜨겁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수애는 유니폼에 새겨진 'KOREA'와 태극문양을 가리켰다. "촬영을 하면서 그 무게감에 짓눌릴 때가 많았지만, 한 나라의 국가대표라는 것이 얼마나 큰 명예인지를 느끼게 됐다"고 했다. 당연히 6~22일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맞는 자세도 달라졌다. "영화 홍보 등으로 (바빠서) 브라질에 갈 수는 없지만, 텔레비전을 켜놓고 정말 열심히 응원할 거예요. 우리 선수 모두의 땀방울이 꼭 좋은 결실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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