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부채의 총량(總量)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부채의 질(質)이다. 문제는 부채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여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뜯어보면 곳곳에 '폭탄'이 도사리고 있다.
가계부채에선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이 잠재적 리스크를 갖고 있다. 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은 2014년 101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6월 말 100조1000억원으로 떨어졌다가 분양 물량이 쏟아지면서 지난해 말 110조3000억원으로 치솟았다.
올해 들어서도 불과 석달만에 5조2000억원이 늘어나면서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9조7000억원의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했다. 이 비중은 2014년만 해도 2.5%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했다.
올들어 은행들이 집단대출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지만 이미 이전에 계약을 맺었던 중도금 대출 등은 계속 불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집단대출은 개인의 신용상태를 꼼꼼히 따지지 않아 부동산경기가 급작스럽게 사그러들 경우 대규모 부실로 전이될 수 있다. 부동산 경기 악화-은행권 부실-신용경색의 고리에서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은행들이 뒤늦게 집단대출에 까다로운 태도를 보이면서 2금융권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도 발생하고 있다. 상호금융 등 서민형 금융사들의 경우 지난 1분기 중 주택담보대출이 3조5000억원이나 증가했는데 집단대출이 주된 요인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5년간 금융부채 증가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30세 미만이며, 신용대출의 경우 30대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LG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은 "향후 가계부채가 부실화된다면 청년층, 노년층,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서 먼저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지만 이들 계층의 절대 숫자는 적지 않다는 점에서 소비 위축, 신용유의자 증가 등 경제와 금융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대출의 경우 산업은행 등 특수은행이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 대출 중심으로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 조선ㆍ해운 구조조정이 장기화될 경우 그 여파가 관련 중소기업에도 미치는 만큼 시중은행을 포함한 은행권 전반이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2.17%로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번 대기업 연체율 상승에는 법정관리에 돌입한 STX조선해양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파악된다.
대기업 대출 건전성 악화는 평소 관리 시스템의 문제도 한 몫 하고 있다. 해마다 적자를 기록하고 천문학적인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이다.
공공부문 부채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국회에 제출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올해 말 기준 국가채무는 637조80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당초 예상치 644조9000억원에 비해서는 적은 것이지만 지난해 말 590조5000억원에 비해서는 8.0% 증가하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9.3%로, 지난해 말 37.9%에서 1.4%포인트 높아지게 된다.
국가채무에 비영리공공기관, 비금융공기업 부채를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D3)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문제는 앞으로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수요 증가와 함께 저성장 극복을 위한 재정투입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재정건전성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의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경상성장률 만큼 재량지출을 증가시킬 경우에는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62.4%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연금과 같은 수준의 의무 복지지출이 추가로 시행되면 88.8%,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자 소득에 연계해 늘리면 99.2%까지 국가채무비율이 오른다.
조영주 박철응 손선희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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