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을 만나 우리나라가 양적완화를 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4월 총선 직전 국회에서 논란이 일었던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의원들에게 이 총재가 직접 의견을 밝힌 것이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국회 귀빈회관에서 '최근 대내외 여건과 향후 정책방향'이란 주제로 열린 조찬 강연에서 신흥국이 제로금리까지 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양적완화가 국제 금융시장에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 "제로금리로는 안되니까 통화정책기조를 추가 완화하기 위해 시행한 것이 양적완화"라며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각국이 금리를 제로수준까지 급속히 내렸고, 미국과 유럽중앙은행(ECB)가 엄청난 양적완화를 시행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신용도가 낮다는 점을 언급하며 "가장 위험한 게 자본유출 위험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 실물경제의 부진 정도가 그 정도(위기 수준)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제로금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양적완화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이것이 한은이 할 수 없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한국판 양적완화' 논란은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시작됐다. 당시 강봉균 새누리당 전 공동선대위원장이 총선 공약으로 한은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해소를 위해 자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양적완화 논란은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잠시 수그러들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판 양적완화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논란은 지속됐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논의와 함께 정치권 뿐 아니라 한은, 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관련 기관들에서 논의가 진행됐다. 논의 과정에서 양적완화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우회됐다. 결국 '한국판 양적완화' 대신 한은이 1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를 구축하는 것을 토대로 한 구조조정 지원 방안이 마련됐다.
이 총재가 의원들에게 대외 경제 여건과 경제학 이론 등을 언급하며 양적완화에 대해 설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진행된 한은의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발권력 동원 등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히긴 했지만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한편, 이 총재의 국회 강연은 2014년 9월 이후 두번째다. 이 총재가 강연한 경제재정연구포럼은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과 장병완 국민의당 의원을 공동 대표로 하는 국회의원들의 연구단체로 전체 의원 85명 중 새누리당 의원이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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