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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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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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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름에는 물놀이다. 지난 주말 아이들 물총놀이로 아파트 단지가 시끌벅적했다. 저 무리에 두 아들 녀석도 가세했다. 뛰고, 웃고, 소리 지르고. 천방치축들의 물총놀이를 곁에서 지켜보다가 순간 저격을 당했다. 돌아보니 큰 아들 놈이 씨익 웃는다. 한판 붙잔다. 옳다구나! 이 몸으로 말하자면 그 이름도 용맹한 백두산 부대의 저격수 출신이 아니던가. 저 먼 왜군 장수를 화살 한 발로 쓰러뜨린 이순신 장군의 후예가 아니던가. 그래 덤벼라, 2대1이 두려울쏘냐.


큰 놈이 쏘는 물총에 히히, 둘째 놈의 기습에 하하, 두 녀석의 합세에 크크…. 그런데 자꾸 당하다보니 슬슬 약이 오른다. 애비로서의 마땅한 아량과 배려는 물총에 사살된지 오래다. 그렇게 정색하며 두 녀석을 쫓아가 기어이 항복을 받아내고야 마는 쪼잔함이라니. 개도 안 물어갈 쓸데없는 승부욕이라니. 홀딱 젖은 두 녀석이 씩씩거리며 눈을 흘기는데 분하고 억울한 표정이 이렇게 말한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또 다른 '뭣'도 있다. 가까운 선배는 지위가 올라가고 역할이 막중해지면서 먹는 약이 부쩍 늘었다. 한웅큼이다. 새벽 일찍 출근하자마자 비타민 한알, 스트레스가 급습해 뒷목을 부여잡을 때는 오메가 한 덩어리, 몸이 노곤해지면 피로회복제….


건강하게 오래 사려는 욕망은 인지상정이다. 강직한 몸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애사심도 눈물겹다. 저 약들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선배는 그러나 어김없이 야근에 저녁 자리에 강행군이다. 그렇게 숙취의 공범이 된 약병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영화 <곡성>에서 어린 딸 효진(김환희)이 아버지 종구(곽도원)에게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절규하는 장면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헛발질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치와 왜곡에 대한 일침이다. '뭣이 중헌디'도 모르고 '뭣이든 저지르는' 만행과 독선은 일상적으로 반복된다.


어제는 중국산 불량 구명조끼를 국산인 것처럼 속여 판 업자들이 구속됐고, 그제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가 우리나라 소비자들을 '호갱' 취급하다가 퇴출 위기에 내몰렸고, 그그제는 방귀깨나 뀌는 양반들이 '막말 파문'으로 우리의 귀를 씻게 만들었다. 사람보다는 돈이 대접받는 각박한 세태, 이타심은 사라지고 이기심만 분출되는 몰염치한 사회야말로 뭣이 중헌지 모르는 것이다. 후안무치한 세상이 소시민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물총싸움의 쪼잔함이나 한 웅큼의 약은 작은 '뭣'에 불과하다. 적어도 작은 '뭣'은 '뭣이 중헌지' 이내 깨닫고 교화할 수 있다. 자식 말고 뭣이 중헌디! 건강 말고 뭣이 중헌디! 그래, 그러니 이번 주말에는 기꺼이 홀딱 젖어주리라. 아이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원없이 선사하리라.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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