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 '백종원한판도시락'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80년대생인 기자는 급식에 대한 로망을 간직한 세대다. 학군으로 따지면 서울에서 하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다니던 학교가 급식시설을 갖춘 것은 고2 때의 일이다. 돌아보면 엄마도시락이 몇 곱절 맛있는 식사였지만, 식판에 든 급식은 어쩐지 기다려지는 특식이었다.
올록볼록한 하나의 판에 밥과 반찬이 가지런히 담긴 식사는 그래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급식을 먹던 2년은 이제껏 살면서 가장 격 없이 누군가를 사귀면서도 '입시전쟁'을 치르던 때. 급식을 보면 당시의 전우애가 떠오른다고 하면 과장일까. 군대밥이나 고3밥이나 비슷한거 아니겠냐고 하면 돌이 날아올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식판에 담긴 음식'에 대한 기자의 느낌은 그렇다.
도시락은 최근 김밥에 이어 값 싼 인스턴트 음식의 대명사가 됐다. 편의점들은 백종원, 혜리, 신동엽 같은 인기 방송인들의 이름을 건 제품을 내놨다. 사실 이 음식은 도시락이기 보다는 '포장된 급식'이다. 그래서 오히려 반갑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도시락은 편의점 CU에서 팔고 있는 백종원 시리즈 도시락. 그중에서도 대중적인 반찬과 저렴한 가격의 '한판도시락'이 가장 호응을 얻고 있다. 간장양념 돼지불고기, 미니돈까스, 고기산적 2개, 치킨너깃 등 육류와 감자볶음, 어묵볶음, 유채나물, 볶음김치 등 밑반찬이 담겼다. 여기에 백종원 도시락의 시그니처 메뉴인 골프공만한 분홍소시지 2개와 성인 남성 손가락 두개만한 샛노란 계란말이을 더한 10찬 구성이다. 가격은 3500원. 동종 제품 가운데서도 저렴한 편이다.
편의점 도시락은 대체로 '밥 맛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은데, 이 도시락은 햅쌀로 밥을 지어 찐쌀의 푸석함이 없다. 물론 이제 막 갓 지은 엄마표 쌀밥과 비교하면 다소 입안을 굴러다니지만, 가성비로는 훌륭하다. '슈가보이'의 명성답게 반찬들은 달고, 간이 조금 세다. 그러나 심심한 유채나물이나 계란말이로 입안에서 짠맛을 중화시킬 수는 있다. 추억의 분홍소시지는 특히 맛있다. 밥을 입안 가득 넣고, 한입 베어물면 짭짤한 감칠맛이 만족감을 준다.
아쉬운 반찬은 미니 돈까스와 감자볶음. 도시락의 튀김류가 맛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업체들은 다들 포기하지 못한다. 돈까스를 빼고 나물류를 한 두가지 더 추가한다면 환상의 조합이 될 듯. 감자는 서걱거린다. 제조 환경에 따라서 복불복일 듯 한 데, 내 도시락은 감자에서만큼은 불복이었다.
총평은 "꽤나 맛있다". 재구매 의사, 있다. 사실 이미 여러 번 사먹었다. 천국에서 파는 김밥 두어 줄과 한판도시락 가운데 고르라면 고민 않고 도시락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냉장식품'이라는 것은 잊지 않고 먹어야 맛있다. 백종원은 엄마가 아니다. 도시락을 싸준 게 아니라 급식 메뉴를 짜서 내 식판에 담아줬다는 정도로만 이해할 것.
기술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가루스프를 동봉해 국물을 만들어 먹는다거나, 상추 몇 잎이 별첨된 쌈밥세트라던가 좀 더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해장 메뉴로 된 것을 먹어봤으면.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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