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지역에는 14개의 독립국가가 있다. 이들 국가의 배타적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은 2000만㎢를 상회할 정도로 광활하다. 하지만 전체 인구는 약 1000만명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저소득 국가로서 경제력이 취약한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이 지역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그리 높지 않았고 역내 국가들의 국제적 위상도 미미한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우선 태평양도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녹색기후기금(GCF)의 기후변화대응 기금 중 50%를 소규모 도서국 등에 쓰도록 결정된 것은 이들 도서국들의 결집된 입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이 지역에 향후 32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재생에너지가 형성될 것이라고도 전망한 바 있다.
또한 14개 도서국들이 단일하고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역내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정상 간 협의체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9월7~11일)를 앞두고 피지, 키리바시 등은 호주, 뉴질랜드가 기후변화 이슈에서 태평양도서국과 입장을 같이하지 않을 경우 PIF를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처럼 태평양도서국이 국제사회에 강경한 목소리를 낸 것은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태평양도서국들이 소유하고 있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의 잠재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자원 민족주의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이 지역은 세계 수산물의 20% 이상을 생산하는 수산자원의 보고이다. 특히 가장 고급어종인 참치는 세계 어획량의 60%가량을 점하고 있다. 풍족한 어족자원을 바탕으로 태평양 도서국들은 최근 공적개발원조(ODA)의 진정성이 확인되지 않는 국가에는 수산쿼터를 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 대만, 중국 등 주요 원양어업국가들이 이들 태평양도서국과의 수산협상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또한 태평양 지역은 백금, 구리, 코발트, 망간 등 심해저 광물의 보고로서 그 경제적 가치가 수천조 원 이상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남태평양공동체사무국(SPC) 등을 중심으로 해양 연구 및 광물 탐사작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14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피지를 방문했다. 윤 장관은 바이니마라마 총리를 예방하고 쿰부암볼라 외교장관과 한-피지 현안을 협의하며 재생 에너지, 광물 등 우리 진출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양국 외교장관은 회담에서 우리 기업의 피지 바이오매스 발전소사업, 우리 한국해양연구원의 피지 해저열수광상 탐사사업, 양국 간 나토비항 항만개발 협력사업 등 현재 진행 중인 양국 간 주요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1971년 국교 수교 이후 44년 만에 우리 외교장관의 첫 피지 방문은 태평양 지역의 변화된 정서를 읽음과 동시에 거대한 잠재적 시장가치를 현시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피지가 60여개 이상의 국제기구 및 지역기구가 소재하고 있는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물류의 허브로서 태평양도서국 지역과의 협력 거점 국가로서의 역할을 해 오고 있으며, 태평양도서국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실질적인 리더국가라는 점을 평가한 점도 있다.
지난해 9월 민주적 총선 실시 이후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는 피지 정부의 노력을 격려한다는 의의도 있다. 이번 장관 방문을 계기로 태평양 지역으로 외교 지평을 본격적으로 넓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성인 주피지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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