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무슨 내용이에요?' 물으니 '성인영화'라고(하시더라고요). 민규동 감독님은 남들이 어려워하는 이야기를 한 박자 빨리 해서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요. 제일 센 거를 전면에 내세워서 쿨하게 이야기하니까 (다음 충격에는) '아 그렇구나' 하게 되죠."
배우 주지훈(33)은 영화 '간신'(21일 개봉)을 선택할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민규동 감독(45)의 "다음 영화 할래?"란 물음에 제목도 내용도 모른 채 "예"라고 대답했다. 그는 "세월이 주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지만 '간신'은 쉽게 출연 결정을 내릴 만큼 간단한 작품은 아닌 듯하다.
주요 소재는 조선 연산군 시대 '채홍'과 채홍사 '임숭재'이다. 연산군 시대의 채홍은 조선 팔도에서 미녀 약 1만 명을 색출해 강제로 궁에 들인 사건이며 채홍사는 이를 주도·관리한 인물이다. 영화는 궁에 끌려들어간 여자 중 왕과 잠자리를 할 '최고'를 뽑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조선시대에 가축보다 천시된 '여성의 성'을 다룬다는 내용적 어려움 외에도 동성애 등 장면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이 영화, 쉽지 않다. 주지훈은 "영화에 대해서 알게된 때는 이미 출연을 결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모든 걸 오픈 마인드로 봤다"고 말했다. 그리고 "민 감독님은 관객이 배우에게 이입하게 하기보다 관전자 역할을 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더 야하고 불편해 보일 수 있는 장면들도 너무 그래 보이지 않게 하는 게 민 감독의 스타일이다"고 했다.
주지훈은 '간신'을 두고 "새로운 시각의 영화"라 했다. 신하, 그것도 왕 위의 왕이라 불리는 간신의 시선을 담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주지훈이 맡은 '임숭재' 외에 별다른 화자가 없다. 그는 주인공이자 왕 위의 왕, 최고 권력자를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낮은 위치에 서야 했다. 주지훈은 "말이 많아지면 위엄을 지키기가 매우 힘들다. 기방에서 기생과 내기하면서 게임 규칙을 설명한다거나 수련 방법을 내 목소리로 말하기까지 했다"고 이야기했다.
수많은 말을 뱉으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숭재'를 그려내기 위해 민 감독은 매 장면 주지훈에게 까다로운 디렉션을 내놓았다. '너희들이 이 그림을 똑같이 그리면 내가 이 금두꺼비를 '상'으로 내리겠노라!'는 대사에 얽힌 일화는 민 감독의 디렉션이 어느 수준인지 짐작케 했다. 그는 "감독님이 '아니 그 상은 밥상이야'라고 하셨다. (장음으로 발음해야 하는데) 내가 단음이었단다"고 떠올렸다. 숨이 가빠오는 대사를 빽빽하게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감독님께 어필했는데 그러다 바로 다 받아들였다. 감독님 말을 듣는 게 가장 좋은 수다. 촬영 중단할 거 아니면."
그러나 주지훈이 민 감독의 디렉션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만의 색깔을 덧입힌 장면도 곳곳에 있다. 연산군 역을 맡은 김강우와 칼을 겨누며 대립하던 장면이 그렇다. 주지훈은 "연산군이 '너도 내가 정말 미쳤다고 생각하니?'하고 물을 때 몹시 슬펐다. 원래는 눈물 없이 강하게 부딪히는 장면이었는데 간신이긴 하지만 왕의 유일한 친구로서 큰 의미의 사랑을 느꼈다. 눈물을 흘리며 장면을 연결했는데 감독이 오케이 했다"고 말했다.
'간신'을 본 관객의 반응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린다. '재밌다'는 평과 함께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온다. 주지훈은 '간신'이 상업영화임을 인정했다. 상업영화란 흥행을 목적으로 대중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그는 "볼거리가 많아 9000원 내고 보기에 아깝지 않은 영화"라며 "'역사를 재조명하며 아픔을 기리자' 이런 영화는 아니다"고 했다. 그럼에도 생각해볼 거리는 있다는 게 주지훈의 말이다. 그는 "관점에 따라 상사, 동료 같은 인간관계가 조금씩 바뀔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지훈은 모델로 활동하다 2006년 MBC 드라마 '궁'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본격 데뷔한 뒤 스타덤에 올랐다. 2008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를 찍으며 자리를 잡아갔지만 2009년 마약 투약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유낙하"했던 시기라고 기억했다. 2012년 SBS 드라마 '다섯 손가락'으로 복귀한 그는 흥행 성적은 저조하나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주지훈은 "올라가고 있다. 과거도 분명히 제 삶이고 같은 또래가 느끼지 못할 감정들을 느껴봤으니 촬영에서 쓸 카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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