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중고명품숍…"폐업 처리합니다"
중고명품숍 손님 발 길 '뚝'…찾는 이 없어 주말에 문 닫아
명품수선집, 재봉틀이 녹슬 지경…"안 되도 너무 안 된다"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최서연 기자] #1.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중고명품숍을 운영하는 김선규(48)씨는 가게를 내놨다. 한때 샤넬, 지방시 등 최신 가방을 구매하러 오는 손님들로 문정성시를 이뤘지만 최근엔 구경 오는 손님도 없이 혼자 매장을 지키는 일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은 불경기인 데다 샤넬, 지방시 같은 가방은 물량이 너무 많아져서 흔하니까 잘 안 사는 것 같다"며 "돈 있는 사람들은 건너편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살텐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장사가 되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2.강남에서 30여 년간 명품 수선집을 운영해 온 OO사 최성경(54) 대표는 가게를 닫을 예정이다. 명품이고 국산이고 수선을 맡기는 사람도 없고, 그나마 있던 손님도 가로수길이나 명동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장사가 안 되도 너무 안 된다"며 "돈 많은 사람들도 경기가 안 좋으니까 더 움츠러드는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불황을 모르던 명품시장도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다. 지난 주말 찾은 중고명품숍과 수선집들은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구매는커녕 구경을 하는 손님도 찾기 힘들었다. 점포를 내놓고 임대 문의를 내건 숍들도 눈에 띄었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 중고명품숍은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A사 중고명품숍 직원은 "요즘 손님이 별로 없다 보니 인근 숍들은 주말에 문을 닫는 곳도 많다"며 "확실히 파는 사람도 별로 없고 사는 사람도 적다"고 토로했다.
바로 옆 명품 수선집도 재봉틀을 멈춘 지 오래다. 주말이면 한참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간이지만 손님이 아예 끊겼기 때문이다.
부동산 한 관계자는 "중고명품숍과 수선집들이 자취를 감추며 그 자리에 유니클로, H&M 등 SPA브랜드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며 "이제 압구정은 명품이 아닌 SPA브랜드가 주를 이룬 중저가 매장들이 트렌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 년 새 문을 닫은 중고명품숍과 수선집만 수십여 곳에 달한다"며 "그나마 버티고 있는 곳들도 언제 문을 닫을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명 중고명품숍들이 즐비한 명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B사 중고명품숍 직원은 "남자들이나 시계를 사러 좀 오고 예전보다 매장을 찾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토로했다. 명품백들이 브랜드별로 가지런히 진열돼 깔끔한 인상을 준 C사 명품중고숍에는 남자직원 두 명이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꽤나 큰 규모에도 손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장 직원은 "예전보다는 파는 사람이 많다"며 "어떻게 알고 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 사람들도 오긴 하지만 구경만 할 뿐 잘 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명품 수선집을 운영해온 D사 대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선뿐 아니라 낡은 명품을 고쳐 활용하려는 심리가 있었지만 수요도 점점 줄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명품 수선집에 들른 박진경(33·가명)씨는 "예전 같으면 새 구두를 샀을텐데 고쳐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왔다"며 "백화점에 애프터서비스(AS)를 맡기면 한 두 달은 기본이고 가격도 비싸지만 (명품 수선집)여기는 브랜드보다 작업의 난이도에 따라 1만∼2만원을 받아 믿고 맡기게 된다"고 귀띔했다.
롯데백화점 맞은편 건물에서 5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E사 관계자는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워낙 오랫동안 자리잡고 하다 보니 불황이라도 믿고 맡기는 사람들이 있다"며 "롯데백화점이나 신세계백화점 등 명품 판매가 비교적 활발해 타 지역에 비해 아직은 벌이가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최서연 기자 christine8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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