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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아파트 붕괴 사고의 근본원인 '속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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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북한 평양 23층 고층 아파트 붕괴사고는 북한이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을 조기에 대규모로 건설하는 북한 특유의 '속도전'에 따른 부실공사가 주된 원인일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아파트 붕괴의 원인과 관련해 "13일 평양시 평천구역의 건설장에서는 주민들이 쓰고 살게 될 살림집시공을 되는 대로 하고, 그에 대한 감독통제를 바로하지 않은 일군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엄중한 사고가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났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6·25 전쟁 이후 평양 시내 복구를 위해 '평양속도'를 내걸고 대규모 주택 복구사업을 벌였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 1990년대에 단기간에 대규모 아파트·주택단지를 건설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평천 지구도 3년 사이에 10만호의 살림집을 건설하는 사업이 진행된 18개 구역 중 동시에 공사가 벌어진 13개 구역 중 한 곳이었다.


18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과거 주택 건설에 속도전을 도입했다. 6·25 전쟁 이후 15분에 1가구를 건설한다는 소위 '평양 속도'를 구호로 내걸고 평양시 주택의 대대적인 복구를 시도했다

이어 1970~1980년대도 평양시내에 대규모 주택지구의 건설을 추진했다. 1970년대 천리마거리 주택(4000가구)과 낙원거리 주택(3000가구), 1980년대 문수거리 주택(1만7000가구) 등의 사업을 벌였다. 북한은 특히 1989년 1~8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계기로 창광·문수·광복거리 등에도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했다.


1990년 초반에는 북한은 5만가구와 3만가구 주택건설 사업을 벌여 김일성 80세 생일인 1992년 완공을 목 1990년부터 2년간 통일거리에 주택 5만가구 건설을 추진했다. 북한은 특히 주택 5만가구 건설 완료직후 1년간 주택 3만가구 추가 건설사업도 벌였다. 3년 사이에 5만가구를 짓고도 1년 만에 3만가구를 더 지으려니 공사가 얼마나 빨리 진행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2000년대 들어서는 평양시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벌였다. 2001년 8월 김정일 지시에 따라 2002년부터 진행한 ‘평양시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 9월부터 '평양10만호 살림집 건설'이 시작됐다.


2012년 12월까지 완공을 목표로 한 시업은 평양시 18개 구역 중 13개 구역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만경대·형제산·룡성·서성·대성·모란봉·보통강·중·평천·선교·사동·낙랑·역포구역에서 동시에 고층아파트 공사가 벌어졌다.


이를 위해 북한은 2010년 10월 내각의 ‘수도건설부’를 국방위원회의 ‘수도건설사령부’로 편입, 승격하고 중구역 내 만수대지구(창전거리) 건설을 우선 추진해 2011년 5월22일 착공해 2012년 6월20일 준공식을 가졌다. 2700여가구가 입주한 고층아파트와 봉사거리, 공원, 기념 건축물 등을 1년 만에 준공하는 '초고속' 건설이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10만호 표현'은 급감했지만 살림집 건설은 지속하고 있다. 위성과학자거리 1000여가구, 김일성대교육자 살림집 1000여가구 등 특정 직업인 우대차원의 살림집 건설이 진행됐다. 그러나 과하면 탈이 나기 마련. 철근과 콘크리트 등 자재가 부족한 가운데 공기를 단축하는 속도전을 편 결과는 아파트 붕괴라는 대참사를 낳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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