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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명문가⑭]257년 와인글라스 名家 리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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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부역 쓴잔 씻고 와인잔 명가로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 크리스털 주얼리의 제왕 스와로프스키 본사가 있는 오스트리아 바텐스에서 북동쪽으로 80km쯤 가면 쿠프슈타인이라는 산골 도시가 나온다. 이 곳은 티롤주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 인스부르크 다음으로 큰 도시로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수제 와인잔을 생산하는 '리델' 본사가 있는 도시로 더 유명하다.


리델은 '보르도 글라스', '보르도 그랑 크뤼 글라스', '부르고뉴 그랑 크뤼 글라스' 등 와인 품종별로 쓰는 150여 종의 크리스털 잔을 개발해 판매하는 세계 최고의 와인 글라스 회사로 꼽힌다. 한국에는 2000년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배할 때 사용한 잔을 만든 회사로 알려져 있다.


현재 11대손인 막시밀리안 최고경영자(CEO)가 '리델''나흐트만''슈피겔라우' 등 3개 브랜드를 가족기업형태로 경영하고 있다.쿠프슈타인 공장은 138명의 장인과 도제가 섭씨 1000도로 녹인 액체상태인 크리스털을 입으로 불어 가위로 자르고 다듬어 잔을 생산하는 수제품 전문 공장이다.나머지 3개 공장은 완전 자동화된 기계식 생산공장이다. 리델은 수제품 '소믈리에' 시리즈와 '비눔' ,'우베르튀르(Ouverture)' 시리즈 등 기계로 대량생산한 와인잔과 위스키ㆍ럼ㆍ사케잔 등을 연간 5140만 개를 생산해 12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2억6500만 유로(한화 약 3852억 원)로 추정되고 있다. 7개국에 판매법인을 두고 있으며 종업원은 1200여명이다.


지난 2월19일 아버지로 게오르그 리델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막시밀리안 리델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돼 매우 자랑스럽다"면서 "핵심 유럽시장을 강화하고, 중국 자회사를 확대하는 한편, 3년내 라틴아메리카에 새 시장을 개척하는 게 나의 비전"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리델가문은 250여년간 단 한번도 외부 경영자를 영입하지 않고, 한푼의 빚도 지지 않으며 숙련된 장인의 기술과 창의와 혁신을 바탕으로 고객이 좋아하는 와인잔을 제조해 세계 최고 와인잔 제조업체라는 지위와 명성을 유지해왔다.


리델 가문이 유리산업에 뛰어든 것은 1678년 오늘날 체코공화국이 된 보헤미아와 주데티산맥 사이에 있는 주데텐란트에서 태어난 요한 크리스토프 리델(Johann Christoph Riedel)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헤미아는 알프스산의 풍부한 목재를 연료로 일찍부터 유리산업이 발전한 유럽 유리제조업의 중심지였다.그는 이 지역에서 생산된 유리제품을 멀리 스페인과 포르투갈까지 가져가서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러나 리델가문이 유리공장을 차린 것은 손자 요한 레오폴트때였다.요한 레올폴트는 1756년 5월17일 공장을 열었는데 이 해는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가 태어난 해였다.리델가문은 이날을 리델사 창립기념일로 삼고 있다.올해로 25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요한 레올폴트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통 유리로 갈아끼우는 법을 고안해 명성이 자자했다. 1756년 8월 영국과 결탁한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를 침입하면서 시작한 7년 전쟁은 리델가문에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했다.전쟁으로 건물과 유리창이 파손돼 교체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4대손 안톤은 장식유리와 샹들리에로 사업 방향을 틀었고, 5대손 프란츠는 우라늄을 이용해 글라스에 형광색상을 넣었다. 산업혁명기에 태어난 6대손 요세프는 보헤미아를 떠나 철도망과 연결된 폴라운(Polaun)으로 이주했다.그는 또 석탄화력으로 '유리구슬'(bead)과 이보다 큰 덩어리'블랑크'(blank)를 대량 생산해 중개상을 통해 가공공장에 팔았다.


7대손으로 화학자이자 엔지니어인 요세프는 구슬과 블랑크를 기계로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창안했으며 600여 가지의 색깔을 유리에 입혔다. 8대손 발터는 향수병과 샹들리에와 샹들리에 부분품과 최첨단 성형기술을 개발해 1930년대를 주름잡았지만 2차 대전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1938년 체코를 점령한 독일 나치군은 리델 공장을 접수하고 레이더의 핵심부품인 브라운관을 생산하도록 강요했다.발터는 브라운관 직경을 38cm에서 76cm로 크게 만들었다.이게 화근이었다. 발터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지 16일 뒤에 구금돼 동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이어 옛 소련으로 이송됐다.


옛 소련은 유리산업 재건을 하도록 시켰다. 5년간 계약을 맺고 일했으나그는 석방되지 못했다.모스크바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항의했지만 되려 임무를 누설했다는 혐의로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았다.


스탈린이 죽고 당시 아데나워 독일 총리가 전쟁포로 송환을 위해 백방으로 뛴 끝에 그는 10년만인 1955년 풀려났다.


그가 소련에 있는 동안 아들 클라우스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그는 독일군에 징집됐다가 미군에 포로로 잡혔다.클라우스는 10개월간 수감생할을 하다 1946년 독일로 송환되는 열차에서 뛰어내렸다.그리고 포로중 한 사람의 고향마을로 눈을 헤치고 17km를 걸어갔다.



이 때 행운의 여신이 나타났다. 증조부 요세프 밑에서 유리제조일을 배운 다니엘 스와로프스키가 구세주로 나타났다.스와로프스키는 마을에 리델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와 만나기를 청했다.그는 클라우스를 아들처럼 가까이 뒀고 대학에 보내 화공학을 배우도록 했다.


클라우스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해 1951년부터 1956년 사이에 여러가지 일을 하며 돌아다니다 인스부르크에 정착했다.이 때 스와로프스키는 쿠프슈타인의 유리공장 인수를 권유받고 있었는데 스템웨어(다리가 길고 가는 유리잔)을 만드는 게 회사 품격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대신 돈이 없던 클라우스에게 돈을 빌려줘 파산한 공장을 인수하게 했다.


리델부자는 1957년 공장을 수리해 유리잔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클라우스는 단순히 술을 담는 것 이상인 와인잔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는 실험 끝에 잔에 따라 와인의 향과 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이듬해 세계가 깜짝 놀랄 와인잔을 내놓으며 와인잔 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바로 '부르고뉴 그랑 크뤼' 전용 잔이었다. 37온스의 와인을 담을 수 있는 이 잔은 당시 유행하던 잔에 비해 12온스나 더 담았다.



막시밀리안 CEO는 "긴 다리에, 두께가 아주 얇고 무늬가 전혀 없이 투명하며 가운데가 볼록하며 늘씬한 다리를 가진 잔(stemware)은 당시까지 유행한 겉면에 조각을 새기고, 색깔을 입힌 화려한 잔을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형식은 기능을 뒤따른다'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 잔이었다. 클라우스의 와인잔은 각종 디자인상을 거머쥐었고, 뉴욕 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됐다. 이 잔은 클라우스가 1973년 내놓은 리델의 최고급 수제품 와인잔 '소믈리에(Sommeliers)' 시리즈의 길을 열었다.



1994년까지 40년간 회사를 경영한 클라우스는 아들 게오르그에게 회사를 넘겼다.클라우스가 천재 디자이너라면 게오르그는 도전정신으로 똘똘뭉친 탁월한 사업가였다. 1973년 회계담당으로 가업에 뛰어든 그는 1979년리델USA를 시작으로 캐나다,독일,일본,영국 등에 자회사를 설립했다.2004년에는 독일 최대 크리스털 회사 나흐트만과 그 자회사 슈피겔라우를 인수해 리델을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그는 '보르도 글라스' '부르고뉴 글라스' 등을 개발하고, 전세계를 돌며 "같은 와인이라도 잔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는 와인 잔 철학을 펴면서 와인문화를 변화시켰다.


리델 가문의 앞에는 300년 역사를 연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불을 계속 지펴라! 재가 남아있게 하지 말라'라는 가훈을 막시밀리안도 충실히 따른다면 이 또한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박희준 기자 jacklondon@




박희준 기자 jacklondon@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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