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을 맞이하여 얼마 전 집에 있는 화분의 분갈이를 하게 되었다. 처음 분갈이를 할 때 많이 하는 실수가 잔뿌리를 마구 쳐내는 것이다. 굵은 뿌리는 나무를 튼튼하게 고정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잔뿌리는 물과 영양분들을 나무 전체에 공급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모르기에 저지르는 실수다.
볼품없는 작은 것이기에 그 중요성을 모르고 하는 실수.
기업도 그런 것 같다. 여러 분야의 산업이 있지만 모든 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기업은 산업의 기반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중소기업은 그 기반을 성장시키고 운영해 나가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무의 굵은 뿌리와 잔뿌리에 비견될 수 있다.
모든 자본주의 사회의 산업 분야가 그러하듯 내가 몸담고 있는 방위산업 분야 역시 대기업ㆍ중소ㆍ중견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다. 과히 무한경쟁체제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기술 및 경쟁력 향상을 위한다는 명분에 기업 규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값싸고 효율적인 제품이면 된다는 논리 앞에 중소기업 보호는 뒷전으로 밀린다.
이러다 보니 전통적인 중소ㆍ중견기업의 기술우위 영역까지 자금력이 풍부한 비전문 대기업으로 이전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방위사업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업 위주로 사업이 진행되는 정책과 평가 제도로 바뀌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런 것이다. 정부에서 업체 선정 시 기술 역량 및 전문성보다 기업 전체의 '재무제표에 의한 신용평가등급' '전체 연구원 수' 등의 항목의 평가에 가점을 주는 것이다. 그 분야에 특화된 중소기업의 오랜 업력과 노하우 등은 이 같은 객관적 지표 앞에 설 자리를 잃는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기준을 적용하니 중소ㆍ중견기업으로서는 경쟁에서 이기기가 더욱 힘들다.
가뜩이나 자금력에서 열세여서 경쟁을 하기 버거운 터에 정책과 제도마저 대기업에 유리해지고 있는 셈이다. 방산 사업의 잔뿌리를 담당하는 중소ㆍ중견기업은 존폐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 80여개 이상의 방산업체 중 최소 60% 이상이 중소기업이고 방산 분야 협력업체 1300여개 중 중소기업은 92%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굵은 뿌리만으로 나무가 유지될 수 없듯이 대기업만으로 산업이 유지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잔뿌리가 영양분을 흡수해 굵은 뿌리로 전달하듯 중소기업이 제 역할을 해야 대기업도 산업도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다.
제한된 방산시장에서, 대기업과 경쟁이 가능한 분야에서 중소ㆍ중견기업의 특정 영역을 지정한다면, 효율적인 기술 확보 및 경제적인 장비의 조달과 더불어 중소ㆍ중견기업 간의 균형 잡힌 발전을 통한 공생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하여 중소ㆍ중견기업 스스로 원가부정 및 불공정거래 행위 등에 대한 근절과 자정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기업과 상생 환경이 마련된다면 대기업의 하청업체로서 제로 마진으로 인해 존폐 위기에 몰려 있는 중소ㆍ중견기업들의 그러한 행위도 분명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완연한 봄을 맞이하려는 문턱에서 잔뿌리가 나무를 키워가듯 우리 모두 하찮아 보이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도 다시 한번 돌아볼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이성남 휴니드테크놀러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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