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들어 법안 발의 건수는 크게 늘었지만 가결률은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어제 공개한 18대 국회 법안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1만1016건으로 17대(5728건)ㆍ16대(1651건) 대비 각각 2배, 7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반면 가결률은 18대 국회가 5.4%(601건)로 17대 국회 12.1%(697건), 16대 국회 15.6%(259건)의 3분의 1 내지 절반에 머물렀다. 의정 보고서에 담아 선거 때 써먹을 요량으로 '아니면 말고'식 건수 올리기 법안 발의에 급급했다는 증거다.
국회는 법을 새로 만들거나 손질하는 국민의 대의기관이다. 하지만 의원 입법안의 내용과 처리 결과를 보면 의원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이란 말이 부끄럽다. 법안 대다수가 기존 법안을 정비하는 수준에 그쳤다. 심지어 맞춤법을 고치거나 글자 하나를 바꾼 법안도 있었다.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여러 개의 법안이 동시에 제출됐는가 하면 같은 법안인데 내용을 조금씩 바꿔 잇따라 내기도 했다. 정부를 대신해 내는 '청부 발의', 의원들끼리 이름을 빌려주는 '품앗이 발의'도 많았다. 발의 자체에만 신경 쓸 뿐 그 뒤는 몰라라 하는 부실ㆍ졸속 입법이 난무한 것이다.
이런 국회가 4ㆍ11 총선을 앞두고 특정 지역의 표를 노린 법안 처리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법을 비롯해 군 공항 이전 및 지원 특별법안,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법 개정안 등 모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거나 특혜 시비에 공공요금 인상 우려 등 문제투성이 법안이다.
18대 국회는 '뻥 법안'에 앞서 '뻥 공약'을 양산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의원들이 선거 때 내건 공약을 분석한 결과 이행률이 35%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다음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은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선심성 공약 발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선거구 획정 문제를 놓고 같은 당 의원끼리 '왜 내 선거구를 없애려 하느냐'며 멱살잡이까지 했다. 이런 우리 국회에 일본ㆍ싱가포르 의회처럼 세비 삭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야는 말로만 공천 개혁을 외치지 말고 제대로 된 인물을 고르고 국민을 눈속임하는 공약을 자제해야 한다. 국민은 뽑고 나서 금방 후회하지 않도록 엉터리 공약과 후보를 표로 심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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