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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리치몬드 과자점과 이성당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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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리치몬드 과자점과 이성당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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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서울 홍익대 앞에서 빵을 구워 팔던 리치몬드과자점이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대한민국에 8명뿐인 제과제빵 명장 중 1명이 운영하는 이 빵집은 치솟는 임대료를 못 견디고 재벌 계열 커피전문점에 자리를 내줬다. 빵집 주인은 5년 전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임대료를 두 배 올려주었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포기했다고 한다.


동네빵집이 몰락하고 있다. 2003년 초 1만8000여개였던 것이 지난해 말 4000여곳으로 급감했다. 기업화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밀리고 커피전문점과 제과점을 결합한 럭셔리 베이커리 사업에 재벌가 2ㆍ3세 딸들까지 뛰어든 탓이다.

반론도 있다. 경쟁과 효율을 따지는 옹호론자들은 시장경제 원리를 내세운다. 재벌이 사업을 접는다고 죽어가는 업태가 살아나느냐고 반문한다. 재래시장 물건이나 자영업자가 만들어 파는 것과 품질과 가격대가 다르고 위생 상태도 낫다고 한다.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소비자선택권이 먼저라는 논리도 가세한다.


이런 태도와 상황에서 동네빵집이 설 땅은 없다. 재래시장과 골목상권도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점령당하고 만다. 내 돈 갖고 사업하는 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자본의 탐욕은 공멸을 부를 수 있다. 재벌과 기업화한 프랜차이즈, 대형 마트와 SSM만 즐비한 채 동네빵집과 분식집, 전통시장 상인들 대부분이 망하면 대형 마트에서 재벌이 만든 제품을 살 사람도 없어진다.

왜 동네빵집을 걱정하는가. 동네빵집이 무너지면 떡볶이ㆍ라면ㆍ순대집도 무너진다. 김밥ㆍ비빔밥ㆍ청국장에 이어 분식집ㆍ포장마차까지 전국이 획일화된 맛과 가격으로 소비자선택권을 박탈할 것이다. 동네빵집 문제는 단순히 빵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뿌리에 중소기업과 자영업 문제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대 프랜차이즈와 영세 자영업자 간 공생 문제가 달려 있다.


시장에 맡긴다고 세상 일이 다 잘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있고, 못 하는 게 있다.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와 사회가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1% 자본가의 탐욕이 99%의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를 울리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경제발전과 정치의 민주화를 일궜으니 이제 '경제민주화'에 신경 쓸 단계다.


여론이 나빠지자 재벌가 2ㆍ3세들이 럭셔리 베이커리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제빵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로 등극한 프랜차이즈도 가맹점 확장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아직까진 우리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건전하다는 증거다.


동네빵집들이 전부 몰락하진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빵집 군산 이성당은 빵을 굽기 무섭게 팔린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처럼 특히 단팥(앙금)빵과 야채빵이 인기다. 군산시민은 물론 새만금방조제와 군산 구불길 관광객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는다.


멋들어진 이름도, 럭셔리한 건물도 아니지만 이성당은 군산의 자존심으로 통한다. 엄선한 재료를 숙성시켜 수작업으로 하루 7000여개의 빵을 만든다. 불티나게 팔린다고 계속 더 만들지도, 흔한 인터넷 홍보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2ㆍ3호점을 내고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모집하라는 요청도 거절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정부보다, 자본주의 역사보다 긴 67년째 3대를 이어 한 자리에서 빵을 굽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처럼 대를 이어 맛과 장인정신으로 굽는 더 많은 동네빵집을 보고 싶다. 그러려면 제2의 리치몬드과자점이 나타나지 않도록 서로 욕심의 그릇을 줄이고 보듬어야 한다. 그리고 제2, 제3의 이성당을 키워야 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탐욕의 자본주의가 아닌 절제된 자본주의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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