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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인생2막 50+]“유학시절 먹통 독일어 좌절이 귀뚫는 어학공부 운명의 발단”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분 25초

역발상 영어학습 전문가 정찬용씨의 ‘인생4악장’

[당당한 인생2막 50+]“유학시절 먹통 독일어 좌절이 귀뚫는 어학공부 운명의 발단”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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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용(54)은 벼락이었다. 1999년 여름, 그의 영어 학습법은 사람들 사이에 한 순간 내리꽂혔다. 기존 영어 교육을 뒤엎는 도발적인 그 이론에 감전되지 않은 이가 드물었다. 그런데 이 사람, 영어강사도 교육전문가도 아니다. 대기업에서 조경 일을 하다가 스스로 깨친 새로운 방법으로 영어 전도사가 됐다. 영어와의 행복한 화학작용으로 제2의 인생도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초판 발행 후 대만과 일본·중국 등 국내외 300만부 이상 판매. 영어학습서 사상 몇 안 되는 밀리언셀러 등극. 정찬용씨가 쓴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의 성적표다. 일명 ‘영절하’로 통한다. ‘한국 출판시장의 살아있는 전설’이란 수식이 과장이 아니다. 비결이 뭘까. 아무래도 저자 특유의 ‘흥행 동원력’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개인 이력도 흥미롭다. 20여년 간 한 우물만 판 조경학 박사가 나이 마흔 셋에 영어전문가로 변신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남다른 성공 비결을 들어봐야 했으므로. 현재 언어연구소장으로 있는 서울 서초동 GN에듀케이션 사무실로 찾아갔다. 첫인상이 상상 밖이었다. 희고 창백한 피부에 마른 체형. 딱딱하고 살짝 날카로워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는 웃음과 위트가 흘러넘치는 유쾌한 남성이다. 게다가 강연의 대가답게 논리력과 설득력, 낙천과 긍정의 에너지가 한데 어우러져 상대를 ‘정찬용식’ 매력 속으로 풍덩 빠뜨려 버리기까지.


분명 그에겐 특별한 마력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도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정 소장은 운명론을 꺼내 들었다. 문득 이런 단상이 떠올랐다. 베토벤은 교향곡 제5번 ‘운명’을 쓸 때 “시련과 고뇌, 평온함, 열정, 도달한 자의 환희.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지…. 그래, 정 소장의 ‘운명교향곡’도 이랬다. ‘따 따 따 딴~.’ “운명인 것 같아요. 제 두 번째 인생은 충격적인 사건이 발단이 됐습니다.”

‘제1악장 고뇌와 시련’ 독일어 공부 무용지물 되다
정 소장 삶의 운명적인 첫 사건은 박사 과정을 밟던 독일 유학 시절에 일어났다. 1984년 가을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안내원에게 ‘지하철역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생뚱맞게도 영어였다. “제 독일어가 전혀 독일어답지 않아서였어요. 정말 큰 충격에 빠졌죠. 나름대로 한국에서 독일어를 꽤 공부했고 제법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말 못하고 못 알아듣는 고생은 계속됐다. 다닐 학교를 찾는 데만도 사흘이 걸렸단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길을 잘못 든 경우가 부지기수며, 열차 안에서는 안내방송을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역에 내리기도 했다. 역 이름 표지판을 못 보면 끝이라는 생각에 창문 밖만 바라보고 갔다.


수업시간엔 그가 입을 열면 학생들이 모두 까르르 웃었다. “제가 사용하는 독일어가 이상하다며 어디서 배웠냐고 묻더라고요. 시대에 뒤떨어진 옛 단어들과 문어체를 사용해서 모양새가 어색했나 봐요. ‘나는 개를 키운다’는 말을 ‘본인은 견공을 양육한다’는 식으로 말했으니까요. 완전 좌절해서 독일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아예 말문을 닫아버렸죠.”


그는 지금까지 독어를 공부한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망한 그에게 희망의 빛이 비쳤다. 때마침 발생한 스모그 경보로 인해 2주 동안 집에만 갇혀 있게 된 것. TV에서 관련 뉴스를 반복해 듣다 보니 “어라? 빨랐던 그들의 말이 확 느려진 느낌이 들고 이해가 되더라”며 어느 날 귀가 뻥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됐단다.


이 작은 깨침을 최대한 활용해 독일어를 공부했고 보통 1~2년 걸리는 독일대학 유학생 어학시험에 6개월 만에 합격, 정식 입학자격을 따냈다.


“영어를 잘 듣기 위해 많은 것을 귀에 담을 필요는 없어요. 원어민의 발음과 대화 속도로 녹음한 테이프든 비디오든 어느 하나만 골라 귀가 뚫릴 때까지 계속 들으면 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중요한 것은 한국어로 해석하지 않은 채 매일 꾸준히 듣는 거예요.” 아이러니한 건, 조경을 공부하러 갔다가 영어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제2악장 평온함’ 조경전문가서 어학 달인이 되다
독일에서 귀국한 그의 성장 속도는 무서웠다. ‘독일 조경학 박사 1호’. 정찬용이란 이름 앞에 붙은 타이틀은 조경 유학파가 드문 상황에서 몸값을 치솟게 한 특기가 됐다. 연봉 4800만원. 당시 과장급이 3500만원이었으니까 동종 업계에서 당대 최고의 대우를 받고 1994년 6월 대기업 환경사업부에 스카우트됐다. 주로 도시·공간 계획사업을 수주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다 유학시절 터득한 언어 학습 비법을 담아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책을 냈는데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화근이 됐다.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닌, 유명인사가 된 그를 회사에서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부서 내 업무 효율을 위해 복장 자율화, 출근 시간 유연화 등 혁신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던 그가 곱게 보이지 않던 터였다.


[당당한 인생2막 50+]“유학시절 먹통 독일어 좌절이 귀뚫는 어학공부 운명의 발단”


회사는 결국 부서 직원들을 모두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는 악의적인 ‘만행’을 단행했고 할 일 없이 홀로 책상을 지키게 된 그는 두 달간 버티다가 결국 사표를 내고 나왔다. 때는 2000년 4월. 직장생활에 몸담은 지 정확히 5년 하고도 10개월 만이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냐고 자꾸 묻는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웠어요. 사명감이 생겨 책을 낸 것뿐인데 퇴직의 계기가 돼버린 거죠. 참, 이것도 운명이지 싶어요.”
그렇게 해서 정 소장은 본의 아니게 영어전문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시련이 닥친 게 잘 됐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됐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조경이 2조원 시장인데 영어 20조원 시장에 비할 바가 아니죠.” 아내도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도닥여줬다.


회사를 나오고 마음을 정리하니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했다. 곧 그의 앞에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정 소장이 이미 ‘영절하’ 책으로 유명인이 돼 있었기 때문.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알아보고 찾아와 영어 고민 상담을 요청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서점을 가게 될 때는 모자와 안경을 쓰고 변장하고 다닐 정도로 인기가 치솟았다. ‘유명해진다는 게 이렇게 불편한 것이구나’ 실감했다고. 인세만도 수억 원. 2시간에 17만원 이상을 받는 대학 강연 요청도 쇄도했다. 정말 잘 나갈 때는 한 달에 족히 3000~4000만 원을 벌었다. “1년 연봉을 두 달 만에 만회하니까 회사를 진작 나올 걸 하는 후회도 해봤답니다.”


‘제3악장 열정’ 역발상 특화 콘텐츠를 만들다
이런 명제를 들었다. 영어는 공부해야 한다. 문법을 배우고 단어를 암기하며 독해도 해야 영어를 잘 할 수 있다. 잘못 알았다. 이 남자, 정찬용을 보라. 그는 이런 기존 학습방식을 과감히 버리라고 주장한다. 지독한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엉뚱하게도 ‘영어 공부를 하지 말라’고 외친다. 그러고도 세련된 영어를 빚어낸다.


[당당한 인생2막 50+]“유학시절 먹통 독일어 좌절이 귀뚫는 어학공부 운명의 발단”

그가 개발한 학습법은 참신하고 가히 혁신적이었다. 시험용·독해 등에 중점을 둔 공부가 아니라 소리로 언어 습득 본능을 일깨우는 새로운 영어 공부 접근 방식을 알려줬다. 정 소장은 말은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익히고 배울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어는 자연스레 배워야 한다는 것. 해석하지 말 것. 듣는 대로 바로 이해할 것. 음악을 듣는 것처럼 따라하고 즐길 것. 이것만으로도 귀가 열리고 말문이 트인다는 것이다.


직접 개발한 노하우에 정말 자신만만했을까. “그럼요. 유학생활의 성공은 그 나라 말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독일 유학 생활 중에도 제 비법을 계속 전수했는데 이를 따른 ‘정찬용 학파’는 과반수 이상이 박사 학위 획득에 성공했죠. ‘비정찬용 학파’는 3% 정도만 박사학위 따는 데 턱걸이 했답니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영어 학원 사장이 찾아와 투자할 테니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의기투합해 2004년 6월 ‘토스 잉글리시’라는 초중등 영어 학원 프로그램을 론칭 했다. 처음 1년은 힘들었다.


“영어 학습 시장의 주류는 문법과 독해 위주여서 소리 내서 읽기만 하면 된다는 제 콘셉트가 먹혀들기 쉽지 않았어요. 학생, 부모 대상 설명회를 열어도 현장의 반응은 좋지만 끝나면 썰렁하고 수강 등록도 거의 안 됐죠. 그래서 2005년부터 직접 강연을 돌며 지속적인 인식 개선에 나섰습니다.”


1일 2회, 20일씩 총 40회를 진행하자 드디어 반응이 왔다. 아이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완벽한 영어 실력을 갖추게 만드는 결과를 보여 줬고 3년 만에 수강생 3만8000명을 기록, 영어학원 업계 2위까지 올라갔다.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제 이론대로 학습한 아이들을 가리키며 ‘미국에서 살다 온 것 맞죠?’ ‘원래 언어 소질이 뛰어난 거 아니에요?’ ‘원래 공부 잘 하죠? 아무리 아니라고 얘기해도 잘 믿지를 않아요.”


올 3월에는 GN에듀케이션 대표와 손잡고 온라인에 성인들을 위한 영어 학습 사이트 ‘정앤피플 잉글리시’를 오픈했다. “단 몇 개월 만에 진짜 귀가 뚫리고 말이 통할까요?” 기자가 호기심 반, 의구심 반으로 물었다. “8개월 배운 영어로 제게 자유로이 말하고 질문하는 69세 할머니가 있었어요. 뿌듯하더라고요. 그리고…”


[당당한 인생2막 50+]“유학시절 먹통 독일어 좌절이 귀뚫는 어학공부 운명의 발단” 격투기 선수 서두원(30)이 GN에듀케이션을 방문해 정찬용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터뷰 중 KBS TV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했던 2종격투기 서두원 선수가 지나다 정 소장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수업을 들으러 온 모양이었다. 시합할 때 대결하는 선수가 영어를 사용할 때가 많은데 상대편에서 오가는 말, 이를 테면 작전을 알아듣기 위해 배우러 왔단다.


“서 선수는 여기(GN에듀케이션) 다닌 지 6개월 정도 됐어요. 워낙 처음부터 문법과 단어를 잘 몰랐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흉내 내기를 잘 하더라고요. (영어)소리를 잘 따라하니까 귀가 쉽게 빨리 뚫렸죠. 지금 영화나 미드를 보여주면 웬만한 주제는 다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토익 점수가 신발 사이즈 수준인데 두 달 만에 700점을 올려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상당수다. 찍기 실력이 아닌 이상 이런 비법은 온 지구상에, 온 우주를 다 뒤져도 없다고 못 박았다. 기본기에 충실한 제대로 된 학습이 최고의 비법이라고.


숨 가쁘게 걸어와 보니 그는 어느 새 영어의 달인, 삶의 달관자가 돼 있었다. 충분히 먹고 살 만큼 벌고 있어 경제적인 여유와 더불어 생활이 안정되고 평화롭단다.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운명이 닥쳤을 때 변화를 두려워 말고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4악장 환희’ 영어 풍요로운 삶의 원동력 되다
그에게 또 한 번 중대한 삶의 운명적 사건이 찾아올까. 운명교향곡은 어떻게 흘러갈까.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이 그가 영어를 떠나는 순간만은 아니기를.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특별히 인생의 모토를 정해놓고 살진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신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게 행복인 것 같아요.


현상 유지를 목표라고 해두죠.(웃음)” 근시일 내에 실행에 옮길 계획은 영어 학습서 이외에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한 책들도 틈틈이 쓰면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정도다. 감성과 지성, 가정과 일, 글쓰기와 사회 참여 등에서 이룬 팽팽한 균형이 그의 또 다른 진취적인 무기인 듯했다.


정 소장은 영어를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언어로 생각하기 보다는 영어 실력을 갖추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양한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풍요롭게 인생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는 것. 당장 그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강연과 책 쓰기를 할 수 있고 특화된 콘텐츠를 개발해 큰 투자 없이도 사업하며 수익도 꽤 내고 있으니까. 인생2막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중장년층은 경험, 성취 본능, 동기 부여 등이 젊은층에 비해 풍부하고 강해요. 영어 학습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겁니다. 빨리 배우고 더 잘 할 수 있어요.”


이쯤에서 정말 궁금했던 질문 한 가지. “영어 잘 하는 비결은 뭔가요?” 그가 웃으며 말한다. “절대로 영어공부 하지 마세요.” 이어서 알려주는 영어 잘하기 비법 5계명을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수첩에 받아 적었다. 영험한 비기를 써내려가듯.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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