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연기금의 기업 주주권 행사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불을 댕긴 사람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다. 그는 어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거대 권력이 된 대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연기금의 주주권을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단체와 대기업들은 '연금 사회주의 아니냐'며 반발하고 나섰다.
모든 경제단체가 즉각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곽 위원장이 대기업의 아킬레스건인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때문으로 보인다. 곽 위원장은 '대기업의 거대 관료주의'를 공격하면서 삼성전자, 포스코, KT, 신한지주 등을 일일이 거론해 지배구조 문제를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인적 소신"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곽 위원장의 날 선 발언에서는 대기업을 향한 정부 내의 불편한 기류가 읽힌다. 정부와 대기업은 최근 중소기업과의 상생, 제품가 인하 문제 등에서 갈등을 빚었고 문어발식 확장, 일감 몰아주기 등의 행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재계는 '대기업 옥죄기'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언이 아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곽 위원장의 문제 제기와는 별개로 공적 연기금은 그동안 위상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신한금융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국민연금은 2대주주의 위치에 있었으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324조원에 이르는 적립액의 17%인 55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곳만 해도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KB금융 등 139개사에 이른다.
갈수록 힘이 커지고 있는 연기금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당연한 일이다. 투자기업을 감시하고 견제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은 연기금 가입자의 권익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기관투자가는 금융시장을 받치는 안전판이기도 하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놓고 요란을 떨 이유가 없다. 주요 주주로서 원칙과 기준에 따라 독립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면 된다. 관치나 '기업 때리기'의 수단이 될 수 없고 동원돼서도 물론 안 된다. 의구심을 털어내기 위해 주주권 행사의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창의성이나 기민한 대응이 요구되는 기업경영과 장기적 안정성이 우선인 연기금과의 조화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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