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뷰앤비전] 신정아와 나혜석

시계아이콘01분 35초 소요

[뷰앤비전] 신정아와 나혜석
AD

신정아의 '4001'이 화제다. 출간 이틀 만에 초판 5만권을 소화하고 10만권 인쇄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중장년 남성들은 물론이고 20대 여성과 10대 청소년들까지 모이기만 하면 쉬쉬하며 '신정아'를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이야기 종합선물세트다. 그 파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80년 전 '나혜석'이 그랬다. 유능한 화가이자 문필가이던 이 신여성은 1932년 이혼한 지 두 해 만에 당시로선 파격적인 글을 잡지 '삼천리'에 게재한다. '이혼고백서'가 그것이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중략)/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중략)/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를 적나라하게 쓰고 남성중심의 조선사회를 고발하는 수기였다. 조선사회가 들끓었음은 물론이다. 남편 김우영과 애인 최린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녀의 고백은 현모양처를 최고로 치는 사회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행려병자로 비참한 삶을 맞이하게 한다. 물론 두 남자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진보적이라고 생각한 남편이나 최린 모두 실질적인 섹슈얼리티의 문제에서는 여느 남성과 다를 것이 없었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선조 때 시인 임제(林悌)는 평안도 부사 부임길에 황진이 무덤을 찾아 이 유명한 시조를 짓는다. 하지만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벼슬아치로 체통을 돌보지 않고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 하여 파면을 당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을 맞은 그는 "내가 이같이 좋은 나라에 태어난 것이 한이로다"라는 짧은 유언을 남겼다. 남녀 간의 사랑만큼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이야기는 없다. 웅장한 전쟁 서사시에도 여성을 둘러싼 암투가 그려진다. 지키지 못한 사랑으로 고통을 받는 건 물론이다.


교훈은 이런 것이다. '이성으로 잠재운 욕망은 반드시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파우스트도 그랬지 않은가. 노년기에 접어든 철학자 파우스트는 학문으로 청춘을 다 보낸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젊음을 얻은 뒤 '마르게리타'와 사랑에 빠진다. 결국 아이까지 낳지만 버림을 당한 마르게리타는 충격으로 파우스트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를 죽이고 만다. 결국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신정아의 이야기도 너무 닮았다.


한 여성과 얽힌 잘나가는 남자들이 한결같이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구설수에 올랐다. 나혜석도 황진이도 시대를 풍미하는 남성들과 염문을 뿌렸다. 골라서 사랑할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 그 도도함에 10년 면벽 수행을 한 지족선사도 파계를 했고, 대학자 서경덕도 사제 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겼다. '해어화(解語花)'는 기생을 일컫는 말이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는 것이다. 그 꽃들처럼 또 한번의 파문이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한 여자를 둘러싼 잘나가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같은 구조를 지닌 채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지만 이번에도 지난 역사 속 이야기들처럼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남성 위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 같지는 않아서 하는 말이다. 신정아의 '4001'이 나혜석의 '이혼고백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일시적으로 그녀에게 돈을 벌어다 준 정도가 아닐까 싶다.




황석연 사회문화부장 skyn11@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