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의 '4001'이 화제다. 출간 이틀 만에 초판 5만권을 소화하고 10만권 인쇄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중장년 남성들은 물론이고 20대 여성과 10대 청소년들까지 모이기만 하면 쉬쉬하며 '신정아'를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이야기 종합선물세트다. 그 파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80년 전 '나혜석'이 그랬다. 유능한 화가이자 문필가이던 이 신여성은 1932년 이혼한 지 두 해 만에 당시로선 파격적인 글을 잡지 '삼천리'에 게재한다. '이혼고백서'가 그것이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중략)/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중략)/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를 적나라하게 쓰고 남성중심의 조선사회를 고발하는 수기였다. 조선사회가 들끓었음은 물론이다. 남편 김우영과 애인 최린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녀의 고백은 현모양처를 최고로 치는 사회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행려병자로 비참한 삶을 맞이하게 한다. 물론 두 남자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진보적이라고 생각한 남편이나 최린 모두 실질적인 섹슈얼리티의 문제에서는 여느 남성과 다를 것이 없었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선조 때 시인 임제(林悌)는 평안도 부사 부임길에 황진이 무덤을 찾아 이 유명한 시조를 짓는다. 하지만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벼슬아치로 체통을 돌보지 않고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 하여 파면을 당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을 맞은 그는 "내가 이같이 좋은 나라에 태어난 것이 한이로다"라는 짧은 유언을 남겼다. 남녀 간의 사랑만큼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이야기는 없다. 웅장한 전쟁 서사시에도 여성을 둘러싼 암투가 그려진다. 지키지 못한 사랑으로 고통을 받는 건 물론이다.
교훈은 이런 것이다. '이성으로 잠재운 욕망은 반드시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파우스트도 그랬지 않은가. 노년기에 접어든 철학자 파우스트는 학문으로 청춘을 다 보낸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젊음을 얻은 뒤 '마르게리타'와 사랑에 빠진다. 결국 아이까지 낳지만 버림을 당한 마르게리타는 충격으로 파우스트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를 죽이고 만다. 결국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신정아의 이야기도 너무 닮았다.
한 여성과 얽힌 잘나가는 남자들이 한결같이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구설수에 올랐다. 나혜석도 황진이도 시대를 풍미하는 남성들과 염문을 뿌렸다. 골라서 사랑할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 그 도도함에 10년 면벽 수행을 한 지족선사도 파계를 했고, 대학자 서경덕도 사제 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겼다. '해어화(解語花)'는 기생을 일컫는 말이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는 것이다. 그 꽃들처럼 또 한번의 파문이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한 여자를 둘러싼 잘나가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같은 구조를 지닌 채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지만 이번에도 지난 역사 속 이야기들처럼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남성 위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 같지는 않아서 하는 말이다. 신정아의 '4001'이 나혜석의 '이혼고백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일시적으로 그녀에게 돈을 벌어다 준 정도가 아닐까 싶다.
황석연 사회문화부장 sky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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