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첫 유조선 건조기 - (끝)
명명식 후 기기 오작동···시운전시에는 보일러 폭발사고도
인도 예정일 넘겨 1974년 11월 28일 인도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진수 직후 4개월간 안벽에서 기계별 시험을 끝낸 1호선 명명식은 1974년 6월 28일 치러졌다. 2호선도 이날 함께 명명식을 가졌다.
이날은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준공식이기도 했다.
2호선은 6월 20일 완성되지 않은 채 진수됐다. 프로펠러가 부착되지 않았고 선체에는 붉은색 방청도료만 칠해져 있었다. 진수 직전 프로펠러를 부착해야 할 선미부의 구멍을 철판으로 막았고, 명명식장에서 보이는 선체부문만 1호선과 같은 색으로 칠했다. 일시적인 눈가림작업이 명명식 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명명식이 갖는 큰 의미 때문에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6월 28일 오전 11시 정각에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명명식이 거행됐다. 식장에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정부요인들과 국내외 외고사절, 선주 리바노스와 수행원, 정주영 회장을 위시한 현대중공업 임직원과 그 가족, 울산시민 등 5만명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오늘과 같은 업적을 이룩한 현대조선 전사원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말한 뒤 “1, 2호선의 명명은 중화학공업 발전의 새로운 기틀이며 전진하는 국력의 상징”이라고 감회를 피력했다. 곧이어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1호선을 애틀랜틱 배런(Atlantic Baron, 대서양의 남작)으로 명명, 이 배가 오대양을 누비며 세계 인류에게 크게 기여하라고 송축했다.
2호선은 용선 회사인 영국 쉘 석유회사 맥파젠 회장의 영애에 의해 애틀랜틱 배러니스(Atlantic Baroness, 대서양의 남작부인)로 명명했다. 하늘에는 비둘기가 날고, 수없이 많은 풍선이 떠올랐다. 뱃소동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식이 끝난 뒤 박 대통령 내외는 정 회장의 안내로 애틀랜틱 배런호에 시승해 선실 안을 둘러보고 뱃고동을 직접 울려보기도 했다.
배가 완성되기까지 다섯 차례나 사양을 바꾸는 등 갖가지 어려움을 안겨줬던 선주 리바노스도 정 회장에게 인사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배 가운데 가장 잘 만들어진 배입니다.” 특히 본사 기술진이 독창적으로 설계해 나무로 장식한 실내 의장에 크게 만족해했다. 배를 감정하는 데 까다롭기로 소문난 리바노스의 이 같은 평가는 현대의 건조 기술이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했다.
1, 2호선의 완성으로 조선소 준공식을 겸한 이날 명명식에서 정부는 본사 임직원 55명을 서훈, 표창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박 대통령은 현장에서 ‘조선입국(造船立國)’이라는 휘호를 썼는데 이 휘호는 돌에 새겨져 지금도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 앞에 세워져 있다.
명명식은 끝났지만 시련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석 달간 기계별로 정밀점검을 한 뒤 10월 5일 배의 속도 및 조종성능, 전체적인 콘트롤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한 마지막 해상 시운전에 들어갔다. 이 시운전만 끝나면 10월 15일 인도할 계획이었다.
안벽에서 미완공사를 끝내고 계류시운전을 한 다음 해상시운전을 하는 것이 원칙이나 계약상 인도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해상시운전을 하면서 미완된 부분을 완성시킬 계획으로 15일 정도 일정을 잡아 출항했다. 선주측은 해상에서 감독하기도 어렵고 일단 출항하면 완료 때까지 출퇴근을 해야 하는 불편이 있기 때문에 반대했으나 현대측의 요청에 따라줬다.
시운전요원들은 승선경험이 없는 사람이 태반인데다 어려운 터빈기관에 관해서는 모두 무경험자들로서 책임자 2~3명만이 구형 터빈 경험자여서 전체 시스템을 관리할 기술자가 없었다. 우리나라 전체에 이 기관을 운전해 본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본선은 자동화 된 최신 선박으로 보일러 및 터빈은 스웨덴의 BBC 및 ACC로서 코감스에서도 새로 개발해 처음 사용한 장비로서 자기들도 내용을 몰라 2~3개월 주야로 만지기만 하고 자동시운전을 하지 못했다. 조선소에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기술자는 없었다. 시운전은 기기의 개별시험에서 선박의 성능 시험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 시험을 해야 했는데 하나하나가 수시간 내지 며칠을 요하는 어려운 시험이었다. 이처럼 미완 상태로 출항했기 때문에 한정된 20여명의 요원으로 24시간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시운전에 들어가자 기관실과 갑판 위의 거의 모든 기기들에서 이상이 나타났다. 사전준비와 자체 시운전, 선주 입회시운전에 실패하면 종일 준비하고 다음날 입회시운전을 실시, 이것이 끝나면 다음 책임자 입회하에 시운전 하자는 등 동일한 시험을 2~3회 실시해달라고 해 선주와의 대립이 많았다. 조선 기술을 신뢰치 못하니 선주들이 확신할 때까지 수차례 시험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선주들은 시간을 끌어 계약 위반일까지 끌고갈 마음으로 지연작전을 썼다.
선상에는 시운전요원, 조선요원, 작업자, 선주감독, 선급, 기기메이커에서 온 서비스기사 등 200명 이상이 항상 승선하고 있어 식사공급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육상의 지원부서도 매우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나마 자체 시운전을 할 때는 규정대로 잘 운전되던 것이 선주가 입회하면 되지 않고 선주는 다른 시운전에 입회해야 하기 때문에 가버려 초초하기란 이루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첫 시운전에서는 세 가지 큰 문제가 발생했다. 영국의 조 하스티(Johe Hastie)에서 공급한 조타장치, 영국 B&W에서 구입한 보일러 튜브의 내부부식, 시운전 도중 보일러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등이다. 조타장치는 공급사의 기술자가 와서 오랜 설득 끝에 승인됐으며 튜브 부식은 그 당시 보일러 튜브 가공 기술이 없어 가공된 것을 수입, 조립했는데 시운전시 튜브 내부에 부식이 있다 해서 반을 절단해 검사하니 약간의 피팅 현상이 있을 뿐이었다. 영국에서 오래 저장해뒀던 것이고 선급이나 전문가들이 이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도 선주는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다. 튜브의 교체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구입해 투입하는데 2~3개월이 소요된다. 조선소에서는 대안으로 보일러 전체 가격을 보상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선주측에서는 튜브 교환을 고집하며 시일을 끌었다.
선주측과 교섭하는 한편 일본 가와사키 중공업에 시운전요원의 지원을 부탁해 5명의 요원이 파견돼 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들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직접 지도는 회피한 채 견학하는 기분으로 우리가 하는 일을 평가하는 정도였다.
이 때 보일러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B&W 기사와 가와사키 요원들이 현대중공업 직원과 같이 보일러 점화시험을 하던 중 BBC자동장치가 작동치 않아 수동으로 점화했는데 1차 점화에 실패하고 재점화시 미연소 가스를 완전히 배출치 않은 상태에서 점화를 했던지 역화현상(Back Fire)이 발생해 폭발해버렸다. 제일 우려했던 사고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이 사고로 인해 튜브 교환은 물론 전면수리를 해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됐다. 모든 직원은 허탈 상태에 빠지고 넋을 잃었다. 그러나 기한이 아직 있었기 때문에 튜브를 전면 교환해주는 것으로 결정했고 즉시 구입에 들어가 재조립 작업을 했다.
24시간 복구 작업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험 항목을 전부 완료하고 계약 만료일을 기다렸다. 그 많은 것을 전부 끝낸 것이다. 단지 선주가 지적한 시운전과 아무 관계없는 2~3가지 아이템을 출항 전까지 마쳐주기로 합의했다.
인도일정이 늦춰지자 선주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기관, 언론 등이 다시 과연 이 배가 움직일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임직원 모두가 달라붙어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배에 한 번이라도 오르지 않은 사원이 없었고, 한번 배에 오르면 몇 주일씩 배 안에서 생활했다.
현장지휘를 책임 맡았던 김영주 당시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배 위에서 고사까지 지내며 작업을 독려했다. 고사는 선주국가인 그리스를 존중해 그리스 정교의 주교 사진 밑에다가 온갖 음식을 차려놓고 치렀다. 마무리 강행군에 지칠대로 지쳐있던 모든 임직원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였다.
11월 27일 오후 백충기 이사와 선주 대표 존 볼라보기로키스는 인도 서류에 서명을 마쳤다. 상호 확인절차를 거쳐 11월 28일 새벽 2시 30분 공해상에서 애틀랜틱 배런호를 인도했다. 애틀랜틱 배런호는 곧 수평선 저 너머로 사라졌고, 한 편의 신화가 완성됐다.
<자료: 현대중공업>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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