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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라면 어떻게 했을까

시계아이콘02분 09초 소요

"증시에 유혈이 낭자할 때가 주식을 매수할 타이밍이다."


18세기 영국 귀족이며 로스차일드 가문의 후손인 바론 로스차일드가 남긴 투자 격언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천문학적인 자산을 이룬 계기는 워털루 전쟁 당시 채권시장에서의 베팅이었으니 실제로 유혈이 낭자할 때 큰 돈을 쥔 셈이다.

하지만 바론이 간과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거리에 붉게 물들인 유혈 속에는 자신이 흘린 핏자국도 섞여 있다는 사실을 언급해야 완벽한 격언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역발상 투자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모든 종목이 상승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워런 버핏이 지적하는 것처럼 환희로 가득찬 시장에서는 그만큼 높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떤 투자 결정에 대해 모든 투자자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으면 분명 뭔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역발상 투자란 말 그대로 군중과 반대로 움직이는 기법을 의미한다. 역발상 투자자들은 우량한 기업의 주가가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급락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공포와 패닉에 빠져드는 군중과 판이하게 다르다.


그들은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은어처럼 시장의 흐름에 역행한다. 효율적 시장가설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시장이 늘 틀린다고 생각한다. 주가가 항상 균형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늘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은 상태를 반복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가격 등락이 크면 클수록 시장의 군중들이 크게 오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역발상 투자자들은 공포스러운 급락장에서 큰 수익을 올렸다. 1987년 다우존스 지수가 단 하루에 22% 내리꽂혔던 블랙먼데이와 1973~1974년 22개월 동안 지수가 45% 추락했던 베어마켓이 대표적인 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에도 역발상 투자자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사례는 얼마든지 있지만 역발상 투자자들이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투자 시점은 따로 있다. 1973~1974년 베어마켓 당시 워런 버핏은 워싱턴 포스트의 지분을 사들였고, 배당 수익을 제외하고도 100배를 웃도는 투자 차익을 남겼다. 워싱턴 포스트가 크게 저평가돼 있었다는 것이 버핏이 밝힌 투자 이유다.


왜 저평가 됐다고 판단했을까. 당시 워싱턴 포스트가 보유한 자산 가치는 4억 달러를 웃돌았지만 시가총액은 고작 8000만 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9.11 테러 직후 전세계 여행객이 급감했다. 하지만 당시 보잉 주식을 샀더라면 결과가 어땠을까. 보잉 주가는 테러 이후 약 1년 동안 내림세를 지속했다. 하지만 주가가 바닥을 치자 5년 동안 네 배에 달하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테러의 충격은 상당 기간 항공업계를 압박했지만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계량적으로 분석하고 보잉이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베팅한 투자자는 그만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서드 애비뉴 밸류 펀드의 매니저인 마티 휘트만은 K마트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던 2002년 전후로 회사채를 사모았다. 매입 금액은 1달러당 고작 20센트. K마트가 당장이라도 문을 닫을 것 같았지만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면 회사채가 새롭게 거듭날 K마트의 신주와 교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이다.


1954년부터 1992년까지 템플턴 그로스 펀드를 운용했던 존 템플턴 경 역시 유명한 역발상 투자자다. 1954년 1만 달러 규모로 펀드의 A주를 매입한 투자자는 1992년 20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연율 수익률은 14.5%로, 배당을 재투자했다고 가정했을 때의 얘기다.


템플턴 경은 시장의 비관이 극에 달했을 때 주식을 매입한다는 지론으로 국내외 주식을 사들였다. 그는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유럽 종목을 대거 매입했고, 이 중에는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템플턴은 레버리지를 일으켜 유럽 시장에 베팅했고, 그로부터 4년 후 천문학적인 수익률을 실현했다.


역발상 투자가 단순히 시장과 거꾸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역발상 투자가들이 경이로운 수익률을 올린 것이 사실이지만 군중이 틀렸다는 판단을 내리기까지 수익률만큼 대단한 리서치가 필요했다. 그들은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베팅하지 않는다. 주가를 끌어내리는 원인이 무엇이며 주가 하락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베팅의 근거다.


또 한 가지, 역발상 투자자들이 종목을 평가하는 기준은 제각각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시장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고 마침내 우매한 군중들이 자신의 의견을 따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3월 저점 이후 뒤돌아 볼 틈 없이 '달렸던' 증시가 혼조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강세론자들마저 하나 둘 씩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내비친다. 로스차일드라면 어떤 베팅을 했을까.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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