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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쌓아올린 고로 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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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소 설립 이야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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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봄. 드넓은 포항제철소 건설부지에는 제1기 설비공사가 한창이었다. 제철소의 꽃이자 핵심 중의 핵심인 용광로, 즉 제1고로 공사도 착착 진행됐다.



우선 축로팀이 조직됐다. 축로팀이 가장 먼저 높은 곳에 익숙해지기 위해 특수부대를 방불케 하는 강훈련을 받았다. 넓은 부지 위에 성냥갑 같은 공장 몇 개만 덩그러니 들어서 있던 당시 포항제철소 부지는 높이 오르내릴 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다. 제일 높은 곳이 독신료의 보일러 굴뚝이었고, 팀원들은 수십 차례 보일러 굴뚝 오르내려야 했다.



다음 훈련은 더욱 아찔했다. 랜드 크루저 한 대가 형산강 철교 위로 그들을 싣고 갔다. 선로 위를 뛰어 다니는 훈련이었다. 바로 아래는 시퍼런 강물. 고개를 숙이면 정신이 아찔해졌다. 철교 위를 수백 번 뛰어갔다 뛰어왔다 하는 동안, 고공 공포증은 점점 사라졌다.



◆0.5mm 오차만 허용= 이어 20일 동안 니혼덴교꾸를 견학하는 연수가 이어졌다. 내화벽돌인 카본 블록(carbon block) 제조 과정을 보기 위해서였다. 축로팀 멤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공부했다. 내화벽돌(연와)이 얼마나 정밀하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사실 카본 블록은 0.5mm 오차만이 허용되는 고정밀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조금만 흠이 생겨도 고로의 수명에 치명적인 결함이 생긴다. 물에 약하기 때문에 절대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훈련과 공부가 세계 수준의 고로건설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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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축로팀 멤버들은 그동안 쌓은 기술로 본격적으로 고로 공사에 투입됐다. 우선 고로 아래쪽에 카모트와 바논질 벽돌 1만 95만장을 쌓았고, 그 위에 내화벽돌인 카본 연와를 쌓기 시작했다.



벽돌 한 장의 무게는 작은 것이 0.5t, 큰 것은 2t에 달했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벽돌을 기계로 한 장씩 들어 올려 시공할 위치에 놓았다. 오차범위는 0.5mm~1mm. 살얼음판을 걷듯 초긴장 상태로 작업을 해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철야작업이 이어졌다. 당시 일본인 기술자문역이었던 구로사키요업 소속 이와모토씨도 조금이라도 공사에 문제가 생길까봐 전전긍긍하며 작업을 감독했다. 카본 연와를 쌓아놓은 창고를 청소할 때는 물을 뿌리는 것도 금지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흠이 생길까봐 신경을 곤두세우며 포스코 직원들과 종종 마찰을 빚기도 했다.



◆깨진 벽돌 붙여서 사용= 다들 긴장하고 조심했지만 불가항력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축로작업 초기, 일본에서 들여 온 내화벽돌 846장 중 2개가 깨져 있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벽돌 2장을 다시 들여왔지만 그것 역시 깨져 있었다.



공기가 빠듯한 상황이라 결국 깨진 벽돌을 이어 붙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깨진 벽돌 2장을 찾아 각각 절반씩 잘라내야 했는데, 최소한 반지름 550mm 이상의 다이아몬드 커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 그런 장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정비공장에서 일렬로 구멍을 뚫어 두 동강을 낸 다음 그라인더로 갈아 정밀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가슴을 졸이며 철야작업을 강행했고, 다행히 고로 품질에는 아무 지장 없이 제대로 시공을 끝냈다. 하지만 당시 작업요원들은 한참 후에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을음 단지속에서의 고된 작업= 10여 개월 동안 연중무휴 고된 작업이 계속됐다. 동원된 인원은 7만1000여명, 고로 본체에 쌓은 내화벽돌만 약 500만장에 달했다. 작업요원들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우선 늘 고로에 매달려서 일을 해야 했다. 고로 내부에 나무판을 매달고 그 위에 올라서서 작업을 했던 것. 엽전 모양의 나무판이었다. 고로 내부에 꽉 차는 이 작업판은 가운데가 뚫려 있어, 그리로 필요한 물건이나 내화물을 달아 올렸다. 공사가 진척되면서 작업판을 점점 더 꼭대기로 달아 올려야 했다.



하지만 공중에 매달려 지내는 것은 고달픈 일이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가장 큰 고역이었고, 고로 안의 그을음도 그랬다. 당시 고로 축로요원들은 모두 숯 검댕이 꼴이었다. 그을음의 근원지는 연료로 쓰는 가스로 카본 벽돌을 쌓으려면 모르타르가 필요한데, 모르타르가 굳지 않게 벽돌을 계속 가열했던 것이다. 그을음의 정도는 심각했다. 고로 안은 그을음으로 가득 찼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검둥이였다.





◆1973년 6월 8일 고로 가동= 공기도 빠듯하고 작업조건도 열악했지만 묵묵히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단 어느 날, 박태준 사장이 현장을 보러 나왔다. 단단하게 쌓여가는 고로 내부를 둘러보고 나올 때 벽돌 반 입구 양쪽 벽에 작업원들의 옷가지며 도시락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표정이 굳어진 박 사장은 즉시 현장 감독원을 불렀다. 검댕이를 잔뜩 뒤집어 쓴 후줄근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청결과 정리정돈을 강조해왔던 박 사장의 평소 모습이었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 하지만 감독원의 모습을 본 그는 안쓰러웠는지 “나, 외국의 각종 공사현장을 많이 봐왔는데, 이렇게 해놓고 공사하는 건 처음 본다”며 지휘봉으로 너저분한 주위를 가리키곤 자리를 빠져 나갔다.



이렇듯 직원들의 희생으로 공사는 무사히 마무리됐고, 1973년 6월 8일 드디어 고로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왔다.



박 사장을 비롯해 모두에게 감격의 순간이었다. 특히 벽돌 한 장 한 장 손때를 묻히고 온 힘을 불어넣은 축로팀의 감격은 누구보다 각별했다. 그들은 단지 벽돌만 쌓은 것이 아니라 한국 제철산업의 희망을 함께 쌓은 것이었다.<자료제공: 포스코>





정리=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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