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일선판사 합작, 유해용 전 판사 '증거인멸' 시간 벌어줬다'

영장기각·지연 반복되는 사이 '유해용 전 판사, 유출문서 폐기'… 법조계 비판 잇따라

'협의해 회수한다'던 대법, 뒤늦게 "접촉 못했다"... "전화 엇갈려서", "주말이라서", "회의중이어서"... 구질구질한 변명
[아시아경제 장용진 기자] 압수수색 영장을 반복해 기각하며 법원이 닷새나 시간을 끈 사이 유해용 전 부장판사가 유출한 재판거래와 사법농단의 증거물들을 모두 폐기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법 영장재판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대법원과 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가 ‘조직적’으로 시간과 기회를 벌어주며 증거인멸을 부추켰다는 지적도 나온다.검찰에 따르면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인 유해용 변호사가 유출한 것으로 알려진 대법원 대외비 문서 수만건이 모두 파쇄된 사실이 확인됐다. 문건을 기록하고 있던 하드디스크는 조각조각 난 것으로 확인됐다.지난 주 압수수색 영장의 ‘대안’으로 대법원이 내놓았던 ‘임의회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7일 대법원은 검찰이 요구한 유 변호사에 대한 고발을 거부하는 대신 “유 변호사와 협의해 유출된 문서를 회수하겠다”라고 밝혔다.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하고 고발도 하지 않지만 대신 문건을 회수해 검찰의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일종의 '협상안'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유 변호사와 성실하게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고 '협상안'을 내놓은 지 나흘만인 지난 10일 오후에서야 처음 유 변호사와 접촉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증거물들이 모조리 사라진 뒤였다.지난 5일 유 변호사가 유출한 각종 대법원 대외비 문서들의 존재가 확인된 후 엿새 동안 일선법원의 영장기각과 심사지연, ‘임의회수’를 앞세운 대법원의 '협상안' 코스프레가 진행되는 동안 피의자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증거를 차례차례 인멸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대법원과 중앙지법은 ‘자연스러운 업무처리’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유출된 문건의 회수를 위해 유 변호사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계속 엇갈리며 늦어졌을 뿐 의도적인 지연은 아니라고 밝혔다. 처음 대법원이 연락을 취했을 때에는 유 변호사가 자리에 없었고, 그 뒤 유 변호사가 연락을 해왔을 때에는 대법원 담당자가 퇴근한 뒤였으며, 주말 동안에는 연락을 하지 않았고, 월요일에 연락을 했을 때는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도 “원래 주말에는 압수수색 영장 심사를 하지 않는다”며 “업무분장에 관한 내부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토요일에는 압수수색 영장을 심사하기는 하지만 영장이 재청구된 경우 영장을 기각했던 판사가 아닌 다른 판사가 심사를 맡는데 토요일 당직판사가 영장을 기각했던 판사여서 심사를 미룰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가 서로 명분을 주고 받으며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부추켰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라는 지적이다. 영장기각 사유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었다는 점을 들어 유 변호사가 관련 자료들을 폐기할 수 있도록 법원이 명분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왔다.특히 대법원의 해명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선의 한 판사는 “정말 대법원에서 그렇게 설명했나”면서 “창피하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만약 법정에서 재판당사자가 이런 식으로 변명했다면 판사들이 어떻게 생각했겠느냐”라면서 “구질구질하다”고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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