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1000유로 세대, 5포 세대

10여년 전에 '1000유로 세대'라는 이탈리아 소설이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매달 1000유로 안팎의 수입으로 독립적 생활을 꾸려야 하는 이탈리아 20~30대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한다. 그들 부모 세대에서는 당연시됐던 안정적인 직장과 결혼이 불확실한 꿈으로 변해버린 청년들의 좌절을 묘사한 작품으로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그 책이 출간되고 얼마 후, 밀라노의 한 대학에서 2차례의 겨울 동안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수업 후 간간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분노와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카페에서 1유로짜리 커피를 시켜놓고 몇 시간씩 대화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한국 학생들은 다 갖고 있던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학생이 거의 없어 토론 집중도는 더 높았다.그리고 10여년이 흘렀다. 요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서 당시 밀라노 학생들의 표정이 읽힌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세대, 3포에 덧붙여 내 집 마련과 대인관계까지 포기한다는 5포세대가 한국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어가 돼버렸다. 커피잔을 든 채, 분노의 열변을 토하던 루카와 현실에 냉소적이었던 마리아의 모습이 지금 우리 청년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10여년 전에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올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은 했다. 너무나 빨리 온 게 아쉽다. 수비수 없는 상태에서 골을 먹은 듯한 느낌이다.오늘의 고민을 주택에 한정해보자. 2017년 서울의 1~2인 가구 비율은 54.7%로 전체 가구수의 절반을 넘었다. 1인 가구의 비율은 2005년 20.4%에서 2016년 30.1%로 급격하게 증가했고 머지않아 1인 가구수가 전체 가구수의 절반을 넘는 날이 올 것 같다. 10년 전과 비교해 자가의 비율은 줄고(2.5%) 월세의 비중은 증가(10.8%)했는데, 30대 가구주의 월세 비중(43.5%)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이러한 숫자는 서울에서 청년이나 신혼부부의 주거난이 과거에 비해 심각해졌음을 보여준다. 상황이 이러하니, 취업은 어렵고 아르바이트로는 정상적인 삶이 어려운 현실에서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갖기는 어렵다. 3포, 5포는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다.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싼 주택을 얻기 위해 지옥고(지하방ㆍ옥탑방ㆍ고시원)를 전전하거나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며 도시 외곽의 주택을 찾는다.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서도 요새는 청년 주거난 해소를 위한 대책 회의를 더 자주 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주택 평면, 감당할 수 있는 주거 유지 비용, 빌트인 설비의 확장, 그들에게 필요한 편의시설, 금융 지원 방안 등 청년 세대의 주거 요구를 조금이라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여기에 청년 주택을 하나라도 더 공급할 적절한 입지를 찾는 일도 병행 중이다. 이미 여러 유형과 많은 물량의 청년, 신혼 주택 공급 계획을 내놓으며 이것이 희망고문이 아님을 알리고 있다. 서울에서만 향후 5년간 청년, 신혼 주택 14만5000가구가 공급된다. 물론 이 물량으로도 청년 세대의 주거난이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간도, 비용도, 집을 지을 공간도 여의치 않음에 문제 해결을 위한 많은 노력이 진행 중이고, 이러한 노력은 청년 주거 공급을 늘려 그들에게 든든한 디딤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마리아와 루카는 이제 30대 중반쯤 됐을 것이고, 당시 대학원생들은 40대에 진입했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던 직장과 집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1000유로 세대의 고민이 해결됐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우리 청년들이 3포, 5포를 안고서 중년을 맞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때다.김세용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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