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범의 행복 심리학 1] 자선냄비에 손 닿는 순간, 마음은 왜 행복해질까
기사입력 2018.04.18 09:01최종수정 2018.08.27 13:40
필요한 물건 구매한 사람보다 여행·기부한 사람이 더 행복…중요한 건 富의 크기가 아니라 사용법
이용범 소설가 새 저금통에 지폐 한 장을 구겨 넣을 때만 해도 분명한 계획이 있었다. 저금통을 깨는 날, 홀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변수가 끼어들었다. 노트북을 바꿀 때가 된 것이다. 여행을 떠날 것인가, 노트북을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노트북을 선택할 것이다. 3년 전 홀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열정은 이미 시들었고,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배우자에게 통보할 처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가는 것과 노트북을 구매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즐거운 경험은 행복의 자산
두 명의 심리학자가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2003년 리프 반 보벤(Leaf Van Boven)과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는 21세에서 69세 사이의 미국인 127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소유와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To Do or to Have? That Is the Question) 결과 여행, 공연 관람, 학습, 선물, 기부처럼 자신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일에 돈을 쓴 사람은 57%가 더 행복해졌다고 답했다. 반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한 사람은 34%만이 더 행복해졌다고 답했다. 경험에 투자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비율도 낮았다.

경험을 구매하는 것이 더 큰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은 여러 심리 실험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원하는 물건을 갖게 되면 행복감은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우리 뇌는 변화에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본래의 행복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예컨대 처음 집을 장만한 신혼부부는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에 사로잡히지만, 그 집에 익숙해지고 나면 더 크고 좋은 집을 원하는 것과 같다. 반면 여행이나 스포츠 활동, 배움 같은 경험은 늘 새로움을 선사한다. 대개 경험은 누군가와 함께 하기 때문에 체험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만남이자 도전의 기회가 된다. 새로운 경험은 익숙해질 틈이 없다.

그럼에도 돈이 생겼을 때 경험에 투자할 것인가,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늘 구매하고 싶은 물건 목록을 손에 쥔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2009년 심리학자 라이언 하월(Ryan Howell) 연구팀이 대학생 1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경험을 구매하는 학생들은 여행을 가는 데 큰돈을 지불하고 싶어 했고, 물건을 구매하는 학생들은 TV, 오디오, 컴퓨터 같은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데 큰돈을 쓰고 싶어 했다. 우리의 삶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연구에서도 물건을 구입하는 것보다 경험에 돈을 투자한 학생들의 만족감이 훨씬 높았다.

경험은 구매한 금액에 관계없이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그 효과도 오래 지속된다. 즐거운 경험은 행복한 추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추억은 오래 지속되고, 결코 지루하지 않으며, 언제든 다시 꺼내 쓸 수 있다. 더구나 추억을 떠올리는 과정은 늘 행복하다.

■물질적 소유의 악순환
물질적 소유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이 스트레스가 다시 물질적 욕망을 부추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4년 미시간대의 아얄라 루비오(Ayalla A Ruvio) 연구팀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자주 공격받는 이스라엘 주민과 테러에 노출되지 않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와 소비 행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 평소 물질적 욕망이 큰 사람들일수록 더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충동적으로 쇼핑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 원인은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밝혀졌다. 미국인 중 물질적 욕망이 강한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컸다. 이들은 충동적인 소비를 통해 낮은 자존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보상받으려는 경향을 나타냈다.

2500명 이상의 네덜란드인을 6년 동안 추적 조사한 2013년 연구에서는 쇼핑을 통해 자신의 불행을 보상받으려는 사람들이 '고독의 악순환'에 빠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쇼핑을 하고, 무한정 쇼핑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시 외로움의 늪에 빠졌다.

소유물은 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새집을 갖더라도 이웃에는 당신보다 좋은 집을 가진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당신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경험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설령 이웃집 부부가 최고급 호텔에서 최고급 음식을 먹으며 세계 여행을 다녀왔더라도 당신의 경험과는 비교될 수 없다. 어쩌면 이웃집 부부의 호화로운 세계 여행이 당신에게는 졸부의 돈 잔치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부자들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돈은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악의 불행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돈을 많이 가졌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부의 크기가 아니라 부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방법은 많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경험을 구매하거나 어떤 의미가 담긴 일에 돈을 쓸 때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낀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행복해지기 위해 특별한 경험에 도전할 필요는 없다. 오늘 밤 오랜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있는데 갑자기 당신이 흠모하던 여배우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해보자. 분명히 당신은 친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여배우와의 만찬에 참석할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경험에는 비싼 비용이 뒤따른다. 2014년 대니얼 길버트(Daniel T Gilbert)를 비롯한 세 명의 심리학자는 대학생 68명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학생들을 4인 1조로 묶은 후 그중 한 명에게 흥미로운 영상을 보여주고 나머지 세 명에게는 재미없는 영상을 보여줬다. 그런 다음 재미있는 영상을 본 학생이 누구인지 공개하고, 서로 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뜻밖에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불편한 감정을 경험한 사람은 재미있는 영상을 본 학생이었다.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데 끼어들지 못하고 무리에서 소외당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 경험은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한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질투심을 유발할 수도 있다. 우리는 대단한 모험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소소한 경험에서 행복을 느낀다. 홀로 식탁에 앉아 비싼 요리로 배를 채우는 사람보다는 타인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나누며 수다를 떠는 사람이 훨씬 행복한 것이다.

물론 돈으로 행복을 구매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다. 2011년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던(Elizabeth Dunn)은 아침 일찍 학생들을 모아놓고 5달러에서 20달러를 나눠준 후 오후 다섯 시까지 다 쓰고 오도록 했다. 참가자 중 절반에게는 자신을 위해 돈을 써야 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다른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는 조건이 주어졌다. 이들이 돈을 쓴 후의 행복 상태를 측정한 결과, 액수와 관계없이 자신을 위해 돈을 쓴 학생보다 남을 위해 돈을 쓴 학생들이 더 행복해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쓸 때 금액은 행복의 크기와 별 관계가 없다. 1만달러를 기부하는 백만장자나 1달러를 기부하는 보통 사람이나 동일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고 행복해질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에는 돈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이 나오는데 이를 '무재칠시(無財七施)'라 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으로 대하는 눈 보시(眼施), 환한 낯빛으로 대하는 얼굴 보시(和顔施), 공손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대하는 말 보시(言辭施), 바른 몸가짐으로 대하는 몸 보시(身施), 착하고 어진 심성으로 대하는 마음 보시(心施),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자리 보시(床座施), 마지막으로 편안히 머물 곳을 제공하는 방 보시(房舍施)가 그것이다.

소설가

※ 소설가 이용범이 새 연재를 시작한다. 인간 심리의 심연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을 탐색하는 인문학 기행. 이용범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유형의 아침'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그 겨울의 일지', '꿈 없는 날들의 긴 잠'을 냈고 장편소설 '열한 번째 사과나무'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동서양 인문학에 심취해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무소유의 행복', '1만년 동안의 화두' 등을 썼다. 인간에 대한 절망과 희망을 천착한 그의 '인간딜레마'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